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세월호 참사 유족과 생존자 가족 등을 만나 "정부를 대표해 머리 숙여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사과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회와 함께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가족의 여한이 없도록 마지막 한 분을 찾아낼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2014년 세월호 사고 발생 이후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진실 규명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함에 따라 지난 정부에서 활동이 마감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진상조사위원회'가 재가동되는 등 후속조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세월호를 늘 기억하고 있었고, 선체 수색이 많이 진행됐는데도 아직 다섯분의 소식이 없어 정부도 애가 탄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가족뿐 아니라 많은 국민이 3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세월호를 내려놓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는 이유는 미수습자 문제 외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왜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던 것인지, 정부는 사고 후 대응이 왜 그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것인지, 그 많은 아이가 죽어가는 동안 청와대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너무나 당연한 진상 규명을 왜 그렇게 회피하고 외면했던 것인지, 인양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지 국민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세월호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가족의 한을 풀어주고 아픔을 씻어주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다시는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분명한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정부는 참사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선체 침몰을 눈앞에서 뻔히 지켜보면서도 선체 안 승객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을 정도로 대응에서도 무능하고 무책임했다"고 질타했다.
또 "유가족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지도 못했고, 오히려 국민 편 가르기를 하면서 유가족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겼다"며 "정부는 당연한 책무인 진실규명마저 가로막고 회피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는 나라다운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 세월호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며 "여기까지 오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 걸렸는데, 늦게나마 마련된 이 자리가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을 주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여러분의 얘기를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인 만큼 편하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해달라"며 "국회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전해철·김철민·박주민 의원이 답변할 부분이 있으면 해주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해양수산부 장관과 국무조정실장이 답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304명 희생된 분들을 잊지 않는 것, 국민을 책임지는 국가의 사명이다'란 제목으로 열린 이날 면담에는 전명선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등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200여명이 세월호 상징인 노란 티셔츠와 조끼 등을 입고 참석했다.
전명선 위원장은 피해자 가족들을 대표로 인사말을 통해 "2기 특조위의 재건을 통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불법 부당하게 자행한 수사 방해와 은폐 조작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강력한 법적 권한을 가진 국가 차원의 조사기구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또 "5·18의 아픔을 간직한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로 승화됐듯, 안산은 4·16 안전공원의 건립과 함께 안전 생명의 교육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며 "안산 공동체 회복과 4·16 재단 설립 등 안전한 대한민국을 이뤄나갈 토대들이 마련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강력한 법적권한 갖는 2기 특별조사위원회가 정부보다 더 효율적일 것이고, 1기 특조위를 이어가는 의미도 있다"면서 "이런 특별법의 국회통과가 잘 될 것으로 믿고, 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미수습자 수습과 관련, "(미수습자 가족이) '우리도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절규하셨는데 이것보다 더 절망적인 소원이 어디있겠느냐"며 "정부가 끝까지 미수습자 수습을 위한 수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이 세월호 선체보존을 요청한 데 대해 "선체조사위에서 보존과 활용계획을 세우도록 돼 있고 이에 따라 선체조사위가 국민여론과 가족의견을 잘 수렴해 그렇게 해줄 것으로 믿지만 정부도 세월호가 안전체험과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이 자리가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동안 대통령에게 하소연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여러분의 뜻을 받들어 늦었지만 오늘 이렇게 시작하게 됐다"면서 "오늘 여러분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출발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한편, 박 대변인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 이동을 위해 청와대 경호처 직원들이 직접 안산으로 내려갔고, 가족들을 태운 차량은 지난 3년여 동안 가족들이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국회 앞과 광화문 광장, 그리고 청운동 사무소를 거쳐 왔으며, 청와대 출입은 일반 방문객이 이용하는 출입문이 아닌 청와대 정문을 통해 들어왔다"고 소개했다.
면담 자리에 참석한 복수의 가족들은 "청와대를 들어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쉽게 청와대 문이 열릴 수 있었는데 그동안 왜 오래 걸렸는지 생각하니 억울하고, 문 열어준 문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유가족 대표들은 단원고등학교 학생·교사들의 기록을 담은 약전(略傳)과 어머니들이 만든 보석함 기념품과 액자 등을 노란 보자기에 싸서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박혜영·정부자씨가 피해자 가족 대표로 선물들을 전달하면서 세월호 약전에 대해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하고 취재진을 향해 보이며 "이것은 세월호 약전이다. 처음 나왔을 때 제가 읽고 페이스북에 소감을 올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보석함 위에는 '세월호 아이들이 대통령 내외분을 만납니다. 무지개 나비에 평화와 약속을 노래하는 아이들의 조화로움을 담았습니다. 세월호, 소녀상, 사드, 백남기 어르신, 반도체, 스텔라 데이지, 가습기 피해자 등 연대의 염원을 나비에 담았습니다. 잊지 않고 늘 기억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엄마 아빠-'라고 적힌 엽서가 붙어 있었다.
문 대통령이 "우리 어머니들이 한분 한분 손작업으로 직접 만든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기념품인 것 같다. 마음 잘 받겠다"고 하자, 박혜영 씨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려 좌중을 숙연케 했다.
생존 학생의 대표로 나온 이예림 학생은 “왜 친구를 잃어야만 했는지는 꼭 알고 싶다. 그리고 우리 친구들이 지금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데, 우리의 추억이라도 서려있는 안산에 모여 있을 수 있도록 조치 해 달라" 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날 면담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과 관련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를 기한을 정해놓고 수색작업을 하지 말고, 수습이 종료될 때까지 계속 수색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 달라. 그래서 이후에 하늘에서 아이를 만나더라도 ‘너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고 아이에게 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의견이 있었다"고 박 대변인은 밝혔다.
또 세월호 선체를 보전하여 안전체험 및 교육관으로 활용하자는 의견, 국회에 계류 중인 ‘세월호 피해자 지원특별법 개정안’이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의견, 그리고 범부처 차원의 피해자 지원시스템을 만들자는 의견, 신체·심리지원 장기로드맵을 만들고, 국립 트라우마센터를 만들어 달라는 의견, 피해자의 사회 복귀에 대한 종합대책도 서둘렀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고도 했다.
아울러 특별조사위원회든 또 지원법 개정이든 이 상황을 가장 잘 아는 피해 당사자들이 그 과정에 한 축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는 문제,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4.16재단의 설립, 추모공원의 건립, 특별법 국회통과 이전에라도 제2기 특별조사위 설립준비단을 구성해서 준비하자는 의견, 그리고 생존 학생이 겪는 심리적 고통의 치유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이어 일반인 유가족들도 일반인 유가족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의견도 있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