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의 IT(정보기술) 특구인 난산(南山)구에 위치한 광치(光啓) 그룹이 개발한 1인용 비행장치 ‘마틴 제트팩(Martin Jetpack)’이었다. 체공 시간은 당시 5분에서 지금은 30분 정도로 길어졌다. 구조용 제품으로 활용할 수 있어 대도시 소방당국으로부터 구매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고 있다.
중국의 항공굴기(崛起)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 하나. 중국 최대 에어쇼인 ‘중국 국제항공우주박람회’가 지난해 11월 광둥성 주하이(珠海)에서 열렸다. 11회째를 맞은 박람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이 행사에서 처음 공개된 중국 공격정찰용 드론 ‘CH-5 레인보우’였다. 사람들은 연신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중국의 ‘CH-5 레인보우’ 출시는 현재 세계 군사용 드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MQ-9 리퍼’(프레데터 B라고도 불림)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미국산과 성능은 동급인데 가격은 절반 수준이다. 미국산은 현재 1700만 달러(약 190억원) 수준에서 판매되고 있다.
중국이 드론을 비롯한 4차산업·신산업 분야에서 훨훨 날고 있다. ‘경악’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드론 산업과 공유경제 등 몇몇 산업을 살펴보면 그 이유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
드론은 스마트폰 이후 최고의 혁신 제품으로 꼽힌다. 중국은 사실상 세계 드론 시장을 장악했다. 세계적인 드론 메이커인 ‘다이창신(大疆創新·DJI)’과 지난해 1월 사람이 타는 드론을 선보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이항(Ehang)’ 등 중국 기업들이 세계 일반 상업용 드론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드론의 원조 격인 미국의 ‘3D 로보틱스’가 자국의 까다로운 항공 규제에 발이 묶여 주춤하고 있는 사이 중국이 시장을 선점해버린 것이다.
드론 시장규모는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에 본사를 둔 IT분야 리서치 기업 가트너는 올해 전 세계 드론 시장 규모를 작년보다 34.3% 증가한 60.4억 달러(약 6조8000억원)로 예상했다. 개인용 드론 시장이 23.6억 달러, 상업용 드론 시장이 36.8억 달러로 각각 추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에만 300개가 넘는 드론 기업이 연일 혁신적인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촬영용, 농업용, 구조용, 운송용, 건설용, 측량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업용 드론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녹화·감시장비·추적기능을 탑재한 경찰 보조용 드론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미중 양국 간 드론 산업의 격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앞서 언급한 공격용 드론도 마찬가지다.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은 중동과 아프리카 분쟁지역에 공격용 드론을 활발하게 수출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기술력을 장착한 드론이 적국의 손에 들어갈까봐 강력한 수출통제 정책을 펴는 사이 중국이 그 틈새를 비집고 있는 것이다. 미국 드론 제조업체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다.
한국도 상황은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드론을 테스트할 수 있는 지역도 부산, 대구, 전주, 고흥 등 7곳에 불과하다. 분야별 규제 기관도 제각각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다양한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 이유를 ‘포괄적 허용’과 ‘제도적 보완’에서 꼽는다. 실용성과 편의성을 추구하는 중국의 문화와도 맥이 닿아 있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중국경제팀장은 “중국이 4차 산업과 새로운 산업에서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제도적으로 안 되는 것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단 추진을 허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보완하는 ‘선(先)포용, 후(後)보완’이라는 말이다. 한 팀장은 “그런 상황에서 창의성이 발휘되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공유경제도 마찬가지다. ‘일단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는 정부 당국의 무규제 원칙을 내세운 정부의 육성 의지 덕분에 승승장구하고 있다. 공유하는 것은 자전거와 우산, 농구공뿐만이 아니다. 콘크리트 믹서, 명품 가방, 자동차 등 사업 모델도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3월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공유경제발전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공유경제 시장규모는 3조4520억 위안(약 676조원)에 달한다. 1년 전에 비해 103% 성장한 수치다. 일자리도 600만개나 창출됐다.
공유경제는 어느새 중국 경제의 대들보로 떠올랐다. 보고서는 공유경제가 2020년에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0%, 2025년에는 20%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같은 고속성장 배경에는 알리페이와 위챗 등 보편화된 모바일 결제가 있다. 중국 주간지 매체 난팡저우모(南方周末) 최근호에 따르면 “현금 없이 휴대폰 들고 외출해도 괜찮다”는 소비자가 조사대상자의 84%에 달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은 실용주의 국가다. 된다 안 된다에 대한 판단이 빠르다. 가능하다고,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파단하면 전폭적으로 밀어준다. 간섭하지 않고 지켜본다. 산업의 큰 그림을 보는 것이다. 드론과 공유경제를 비롯해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5G 통신망 등 미래를 이끌어갈 산업에서 중국이 앞서 나가는 이유다”라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강조했다.
만약 중국 정부가 새로운 시장에 대한 규제부터 했더라면 오늘날 중국 경제를 지탱하는 각종 성공신화는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적극적으로 밀어주되 발생가능한 부작용 해결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도 지난 6월 개최된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몇 년 전 위챗이 처음 생겼을 때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일단 지켜본 후 규범화하기로 했다. 그때 만약 옛날 방식으로 규제했더라면 아마 오늘날의 위챗은 없었을 것이다.”
중국이 디지털 문명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시티’에 수조원을 투자해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열 5세대 이동통신(5G) 선점에 목숨을 거는 것도, 일본을 제치고 전기차 경쟁력 세계 1위 자리에 올라선 배경에도 ‘선포용, 후보완’의 레드카펫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4차 산업혁명 경쟁력은 세계 19위다. 홍콩(10위)과 대만(14위)에도 밀렸다. ‘한강의 기적’을 일궜던 한국의 현주소다.
이 한국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정부는 1일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가상현실(VR), 빅데이터, 핀테크 등 4차 산업혁명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찾아 개선하기로 했다.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크지도 않으면서 굼벵이처럼 행동이 느리다면 ‘민첩한 공룡’ 중국을 결코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