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 판정(潘征) 기자=카스(喀什), 정식 명칭은 카슈가르다. 웨이우얼(維吾爾·위구르) 언어로는 ‘옥석(玉石)이 모인 곳’이라는 뜻의 이곳은 중국 서부에 있는 변경(邊境) 도시 중 하나다.
신장웨이우얼(新疆维吾尔)자치구 남서부에 위치한 카스는 타지키스탄과 파키스탄 등 8개국과 접경하거나 인접해 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유럽을 잇는 ‘대통로’이자 중국의 서쪽 관문인 동시에, 중국에서 주변 접경국이 가장 많고 유럽과도 가장 가까운 도시이다.
카스는 동서양 문화의 진수가 모여 있고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까닭에 실크로드에서 늘 중요한 위치를 점해 왔다. 또한 이곳은 동서양의 무역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수천 년 동안 국경을 지나는 동양의 수출물자는 모두 이곳에서 통관절차를 거쳤고, 서양의 수출물자 역시 여기에 모였다가 각지로 흩어졌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매력을 간직한 카스는 예로부터 수많은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을 흠모해 거쳐간 이들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카스를 여러 차례 방문한 문화학자 위추위(余秋雨)는 ‘토인비의 선택’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만약 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고대 서역에서 살았으면 한다. 그곳은 여러 문화가 한데 모인 축복의 땅(福地)이기 때문이다.” 신장의 이름난 시인 저우타오(周濤)는 카스에서 10년 넘게 살아본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루무치의 오장육부(五臟六腑)를 한눈에 담을 순 있어도, 카스의 그 희뿌연 눈(眼)까지 들여다 볼 순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문화재’카스 거얼고성
카스 거얼고성은 실크로드 요충지에 위치해 예로부터 중국 서역 불교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였다. 중원(中原)의 한(漢) 문화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도시 구조나 건축 풍격에서 당나라, 고대로마의 유풍과 위구르 민족의 현대적 특징이 녹아든 독특한 모습을 갖췄다. 게다가 카스 중심부에 있는 민간주택군은 세계 최대 규모의 흙건축군의 하나로 역사적 의의와 가치가 매우 높다.
중국 내륙지역 고성의 해자와 건축물은 중심축을 기준으로 한 좌우대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리는 대개 깨끗하며 잘 정돈되어 있다. 하지만 카스 거얼고성은 도시의 형태나 건축물의 배치상 중심축이 없고, 융통성 있게 다변화하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도시 전체는 아이티가얼(艾提尕爾) 이슬람사원을 중심으로 외부를 향해 방사형으로 뻗어 있다. 길은 구불구불하고 작은 샛길과 오솔길이 많아 중국에서 유일한 이슬람 문화를 지닌 ‘미로형 거리’로 꼽힌다. 이곳 지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마치 미로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런 시내 옛 거리를 돌아보는 것 또한 카스 관광의 가장 큰 재미이기도 하다.
고성 안의 민가는 흙이나 벽돌, 나무로 지은 집들이 많다. 대부분 지어진 지 수백 년이 된 오래된 집들이다. 여기에는 전형적인 위구르식 정원을 갖춘 집이 많다. 정원에 들어서면 온통 푸르른 풍경이 펼쳐진다. 실내에는 독특한 옛날식 화덕과 벽감(壁龕)이 있고, 위쪽에 정교하게 조각된 꽃이나 채색된 도안을 통해 미(美)에 대한 현지 위구르인들의 감각과 선망을 읽을 수 있다. 거리에는 장터와 수공예 작업장이 나란히 위치한 경우가 많아 삶과 상업이 어우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아 지어진 수백 개의 종교적 건축물은 카스에 신비롭고 고색창연한 중세적 색채를 더한다. 이슬람 건축물이긴 해도, 위쪽의 유리벽돌과 웅장하고 화려하게 채색된 기둥은 불교 문화 및 한대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카스 거얼고성은 이처럼 지방 민족적 특성을 지니면서도 높은 연구적 가치를 지닌 ‘살아있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고성 주민들은 여전히 대대손손 이 흙집과 수천 년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영화 <연을 쫓는 아이>의 일부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천태만상의 풍토인정 박물관’, 카스바자
카스에서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과 상업 활동을 들여다 보고 싶다면 카스바자를 놓쳐서는 안 된다.
‘바자’는 위구르어로 ‘장터’라는 뜻이다. 신장에도 전통적인 무역이 이뤄지는 시장이 있다. 이곳은 시장인 동시에 위구르인들의 사회활동 무대이자 각종 예술 전시장이며, 생활이 이루어지는 중심지이다.
기원전 128년 서역 원정을 떠난 장건은 카스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소륵성(疏勒城, 현재의 카스)은 중원의 도시와 달리 도로와 시장 점포들이 잘 정비되어 있다. 도시 안팎으로 사람들이 북적이고 낙타와 대상(隊商)들이 줄을 잇는다. 각자가 부지런히 상업활동을 하고 온갖 물건이 거래된다. 시장 사람들의 꾸밈새가 하나같이 화려하고 곱다는 점도 흥미롭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언어가 오가는 등 영락없이 시끄럽고 번잡한 시끄러운 시장의 모습이다.”
카스 위구르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카스바자에는 땔감·양탄자·피륙·가축·생산물자·칼·견과 등 각각의 전문 영역이 세분화되어 있다. 특히 보통 가축바자가 열리는 일요일에는 마을 전체에서 온갖 가축을 끌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기서는 고대 실크로드의 오랜 물물교환 방식을 체험할 수 있다.
카스에는 도시 곳곳에 여러 바자가 있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카스의 동문 대바자(현재 명칭은 카스 중앙·서아시아 국제무역시장)이다. 5000개가 넘는 부스에서 수만 개의 상품이 판매되며 일일 유동인구만 10만명이 넘는다. 1992년 이전에는 일요일에만 바자가 열렸기 때문에 여행객들은 지금도 이곳을 ‘일요 대바자’라고 부른다. 지금은 매일 바자가 열리지만, 일요일에는 더욱 복잡하고 떠들썩한 열기를 느낄 수 있다.
1980년대 쿤자랍 고개(Khunjerab Pass)와 투르갓 고개(Tourghart Pass)가 연이어 개방되며 국제 상품 교역로가 열렸다. 쏟아져 들어오는 여행객과 개인상인, 단체상인들은 수많은 외국 상품들을 갖고 들어와 무역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이들은 동문 대바자에서 구입한 중국 상품을 잔뜩 가지고 돌아가 무역의 왕래와 문화 교류를 촉진했다.
카스는 수천 년의 역사를 거치며 고대 실크로드의 ‘아름다운 옥’으로서 독특하고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 신비로운 베일에 싸인 카스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다면, 언제든 카스를 직접 방문해 보자.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