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 현장] 8인의 성난 사람들

2017-07-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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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넘게 이어진 재판에 재판장 등 피로감 증폭

사람들로 가득찬 법정... 여름 들어서면서 불쾌감 높아져

최순실.박근혜 등 주요증인 잇따라 출석 거부... 재판 난항

5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열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을 참관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아주경제 유진희·김지윤 기자 = “가방으로 자리맡아 놨다.” “손대면 폭행으로 고소한다.”

5일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제36차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 앞에 늘어선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실랑이다.
이날 이 부회장의 재판에 청와대와 삼성 간 부정한 청탁의 '연결고리'로 지목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하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인원(110여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150석 규모의 대법정은 80석 정도를 일반사람들에게 앉을 수 있도록 제공한다.

이 부회장의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이 같은 다툼이 법정 안팎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주 3회씩 강행되는 재판일정과 새벽까지 이어지는 법정공방, 편을 가른 참관인 간 보이지 않는 알력 등이 지속되면서 피로감이 점점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법정에 꽉 들어찬 사람들의 열기는 불쾌지수로 변해 연일 일촉즉발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선 재판장부터 힘든 내색이 역력하다. 지난 5일(36차) 자정, 지난달 21일 밤 11시, 5월 31일 새벽 2시, 5월 30일 자정, 5월 29일 새벽 2시 등은 최근 열린 이 부회장의 재판 종료 시간이다. 삼성 측 변호인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돌아가면서 대응할 수 있으나 매번 꼼짝없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재판장들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재판장이 얼굴을 붉히는 일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1일(31차) 열린 공판에서는 변호인과 특검을 향해 “증인 신문 시간 좀 지켜달라”며 “그동안의 일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강한 어조로 지적했다. 같은 달 1일(22차) 공판에서도 “특검, 지금 그건 '질문'이 아니라, 특검 측 '의견'이죠!”라며 꾸짖었다.

특검은 두 달이 넘게 진행된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조바심을 내고 있다. 그러나 주요 증인들은 오히려 잇달아 증언을 번복하면서 특검의 화만 돋우고 있다. 일례로 5월 31일 열린 21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최순실이 삼성 합병을 얘기한 적 없다”며 특검의 주장을 뒤엎는 진술을 했다. 앞서 특검은 "(최순실이) 삼성도 내가 합치도록 도와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라고 얘기한 것을 들었다고 박 전 전무가 진술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전 전무는 삼성의 승마 지원 의혹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핵심 증인으로 꼽혀왔다.

삼성 측 변호인은 제대로 얘기할 시간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증인 심문을 특검이 먼저하고 후에 변호인이 하는 식으로 재판이 이뤄지는 데 자신들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특검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마구잡이식 질문을 하면서 시간을 다 사용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자정 무렵에 끝났던 제35차 공판에서도 특검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한 심문을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 50분까지 7시간 넘게 진행했다. 이날 변호인의 반대 신문은 모두가 지쳐 있는 가운데 4시간가량 이뤄졌다.

삼성 측 변호인은 “특검 측이 시간을 잘 안 지키는 거지, 우리들은 예정된 증인신문 시간 거의 넘긴 적 없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날씨가 더워지면서 참관인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소법정에서 진행됐던 제35차 이 부회장 재판에서 한 참관인은 “참관인이 많은데 왜 이 부회장 재판을 소법정에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토로했다.

5일에는 대법정에서 진행됐지만 30명가량이 입장을 하지 못하면서 보안요원과 참관인 간의 말싸움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참관인은 억지로 들어가다가 손을 다치는 일도 발생했다.

법정의 한 보안요원은 “소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태극기 등을 가지고 와 막으면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며 “특히 이 부회장에 대해 견해가 다른 사람들끼리 자주 다툼이 일어나 중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의 재판에는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다친 사람들이 "당신이 사람이냐, 삼성은 책임져라" 등을 외치기도 하는가 하면, 반대로 “이건 증인을 말려 죽이는 거다, 대한민국 경제가 어떻게 될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두둔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밖에도 법정을 찾은 기자들은 기사에 대한 논조를 가지고 서로를 비판하는가 하면 재판정 밖에서는 청소아주머니조차 일이 많아졌다며 참관인들에게 핀잔을 주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이 부회장의 재판을 찾는 삼성 관계자들은 “증거를 가지고 말해야지, 추측으로만 특검이 입증하려고 한다”며 한숨을 쉬는 상황이다.

이처럼 점점 화로 가득차고 있는 법정이지만 재판의 당사자인 이 부회장만은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두 달 넘게 일주일에 3일가량 법정에 정장을 갖춰 입고 출석한 이 부회장은 대부분 꼿꼿이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간혹 변호인과 상의하거나 서류를 들춰보고, 립밤을 바르는 게 전부이다.

한편 지난주와 이번 주에 이 부회장 재판에 출석할 것으로 예정됐던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오지 않으면서 재판은 더 큰 난항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재판인 만큼 어떻게든 출석을 회피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그러나 핵심 증인이 두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재판은 현재와 같은 지지부진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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