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24시] 반환 20주년, ‘홍콩인’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2017-07-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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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 20주년 기념식·새 정부 취임식

푸퉁화로 진행된 본토인들만의 잔치

[박세준 홍콩통신원]

홍콩=박세준 통신원

지난 1일(현지시간) 오전 9시, 완차이(灣仔)에 위치한 컨벤션전시센터에서 ‘홍콩 조국(중국) 복귀 경축 20주년 기념식 및 홍콩특별행정구 제5기 정부 취임식’이 거행됐다.

이번 취임식은 이례적으로 푸퉁화(普通話·중국 표준어)로만 진행됐다. 취임식에서 중국 중앙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통해 당선된 캐리 람(林鄭月娥) 신임 행정장관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앞에서 오랜 시간 연습한 티가 역력한 푸퉁화로 취임 선서와 취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시 주석은 “국가 주권의 안전을 해치는 모든 활동과 중앙 권력·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헌법 격) 권위에 대한 도전, 홍콩을 이용해 벌이는 중국 본토에 대한 침투·파괴 활동이 모두 마지노선을 건드리는 것”이라며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환 20주년을 맞는 홍콩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날 오후 8시, 취임식이 진행됐던 센터 인근에는 사상 최대의 불꽃쇼를 보기 위한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현지 언론의 집계에 따르면 빅토리아 하버를 사이에 두고 홍콩섬과 주룽(九龍)반도 일대에서 26만명이 불꽃쇼를 관람했다.

총 8막으로 구성된 불꽃쇼를 위해 5척의 배가 동원됐고, 총 3만9888개의 불꽃이 하늘 위를 수놓았다. 홍콩 정부는 이 23분짜리 행사에 1200만 홍콩달러(약 17억5000만원)를 쏟아부었다.

불꽃놀이 도중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는 홍콩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했다.

간자체로 쓰여져 많은 홍콩인들의 비난을 샀던 ‘중국 홍콩(中國 HK)’이라는 불꽃 글자도 비로 인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반환일 하루 동안 홍콩 여러 지역에서 있었던 경축 행사를 관람한 사람들은 중국 본토 관광객이 다수를 차지했다.

시내의 고층빌딩 곳곳에 걸린 반환 경축 네온사인 근처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중국 관광객들과는 달리 대다수의 홍콩인들은 축하나 시위 분위기 양쪽 모두에 영향을 받지 않고 비교적 차분하게 일상을 영위했다.

그러나 이들의 내면을 살펴보면 민주세력의 분열 및 방향성 상실에 대한 실망감과 홍콩의 경쟁력 약화에 대한 두려움이 엿보였다.

중심 상업지구인 코즈웨이베이에서 만난 한 홍콩인은 “지난 2014년 7월 1일 행진과 10월 1일 시위에 참가했었지만, 그 후로는 (민주화 관련) 시위에 참가한 적이 없다”며 “그동안 민주파가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 시민들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홍콩 반환 전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다는 한 지인은 “빈부격차는 계속 심해지고 있고, 일반 사람들의 생활이 팍팍해지면서 홍콩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인정(人情)과 홍콩 특유의 매력이 사라져 버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반환 20년을 맞은 홍콩은 민주화 요구와 사회 분열 해결, 산업 경쟁력 제고와 빈부격차 해소라는 다층적인 과제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 5년 동안 홍콩을 이끌 캐리 람 행정장관은 중국 관영매체인 CCTV와의 인터뷰에서 “사회 통합이 최우선 과제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어 홍콩의 미래를 확보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밝혔다.

그의 바람과 달리 홍콩 독립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고, 이는 정치적 갈등을 넘어 세대 간, 계층 간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인데 홍콩 시민들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행사에는 광둥어를 쓰는 홍콩인이 아니라 푸퉁화를 사용하는 본토 출신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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