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정책 중 일부는 이전 정부에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좌절됐거나,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해 의미가 희석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재의 모순된 경제·사회적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 전적으로 재벌을 포함한 기업들에 있다며 온전히 기업에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12일 산업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이후 경영계획을 준비 중인 기업들은 요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접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정부의 정책 발표를 분석해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지만 정부의 기대에 충족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회사 내 대관 조직을 통해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 정책 기조를 파악하고 기업의 입장을 설명해 왔으나 지금은 이런 활동도 전면 중단했다”고 덧붙였다.
‘소득주도 성장’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첫 추경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일자리 창출,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해소 등 분배 악화 극복을 통해 서민생활 안정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통신비·카드 수수료 및 금융권 대출이자 인하, 부동산 규제 등 일련의 정책과제 등은 새 정부가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각오다.
산업계는 대체로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공감하면서도 실효성과 형평성 등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새 정부는 통신요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기본료(1만1000원)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망내할인(같은 통신사 가입자 간 통화 시 요금할인)·가족할인(가족 구성원이 같은 통신사 가입자일 경우 통화요금 등 할인) 등을 적용한 결과, 가입자들의 통화량 증가로 통신사에 지불하는 요금 총액은 오히려 늘어났다. 반면 통신사들은 유선전화 통화 비중이 급감해 요금 인하분 못지않은 수익 감소 사태를 겪었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과 본사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 및 사내하청업체 소속 직원들의 본사 정규직 전환 등도 기업 고유의 권한인 고용 체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특히 비정규직과 사내하청업체 소속직원들의 본사 정규직화는 기존 본사 정규직 직원들이 임금 인상분을 함께 나눈다는 양보와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여기에 일부 기업들은 경기 침체 등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한창인 상황에서 이 같은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사실상 ‘노-노 갈등’을 유발하는 강력한 뇌관을 던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노 갈등은 노-사 갈등 못지않게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불안요소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서민정책들은 노동조합과 사회단체의 입장을 주로 반영한 것들로 실제 시행되었을 경우 발생할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고민해 보지 않은 듯하다”면서 “정책의 역효과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윽박지르며 무시할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