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권 칼럼] 천년은 갈 일을 생각해야

2017-06-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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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사진=조성권]


조성권(본사 초빙논설위원, 전 국민대 겸임교수, 전 예쓰저축은행장)

 ‘생각’은 순우리말이다. 생각(生覺)이란 한자어는 중국어 사전에 없다. 순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뜻하는 한자어는 여럿 나온다. 그중 생각 사(思), 생각 념(念), 생각 상(想)이 우리말에 가장 어울린다. 셋 모두 같은 ‘생각’을 말하는데, 쓰임새를 살펴보면 시제(時制)는 다르다. 사(思)는 과거, 념(念)은 현재, 상(想)은 미래의 생각을 각기 뜻한다.
쓸 만한 행동은 생각으로부터 나온다. 생각이라는 밑천을 들이지 않은 행동은 주목 받지 못한다. ‘생각이 없었거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는 지탄을 부르기 마련이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해야 하니 시제에 맞는 생각은 현재나 미래가 된다. 회의록이나 소소한 모임의 잡담도 기록해 보면 오고 간 생각들의 시제를 나눠볼 수 있다.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에는 과거 얘기가 많지만, 초등학생들 모임의 화제는 미래가 많다는 연구도 있다. 초등학교 학급 회의가 활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발전하는 조직의 회의에는 미래에 대한 생각의 공유가 많다고 한다. 꿈을 함께 나누는 조직은 응집력이 뛰어나다. 역량을 한데 모을 수 있으니 그 조직은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나면 과거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일본인은 현재, 중국인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얘기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한 달을 넘겼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이게 나라냐'며 촛불을 들었던 국민에게 답하려고 노력했던 한 달"로 자평했다. 일자리위원회 설치,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노후 석탄 화력발전 가동 중단, 기간제 교사 세월호 순직 인정, 4대강 보 개방 등을 한 달간 업적으로 제시했다. 그 밖에 사드보고 삭제, 4대강 조사, 원전 폐기 등 여러 지시도 있었다. 인수위도 꾸리지 못하고 취임한 지 한 달을 두고 얘기하기 뭣하긴 하다. 오래 생각해서 이루어 낸 업적이겠지만 생각보다 못하다. 아쉽게도 모두 현재나 과거에 대한 얘기들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는 시기에 흔히 진행되는 빅 배스(Big Bath)이겠거니 여길 뿐이다.

업적에는 빠져 있지만, 오히려 신선했던 일은 취임 첫날에 나왔다. 자유한국당 등 야 4당 대표들을 모두 만났다. 황교안 총리와 점심을 함께 하며 정권 인계인수 문제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와도 전화 통화를 모두 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섬기겠다."고 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도 끝나야 한다."며 야당과의 대화를 정례화하겠다고 했다. 야당 대표들을 만나서는 안보 관련 상황을 자주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손을 내미는 정치의 대전환’은 깊은 생각에서 나온 듯하다.

협치의 정치는 역사에서 생각을 얻을 수도 있겠다. 상황이 흡사하다.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는 태조 왕건의 3가지 정책 또한 폭넓은 생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태조는 고려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준 호족들과 혼인정책으로 통합했다. 마음에도 없을 정략결혼을 통해 29명의 부인과 36명의 자식을 두었다. 또 결혼정책과 유사하게, 왕건의 성인 왕씨 성을 하사하는 정책도 시행했다. 당근만 주지 않고 채찍도 있었다. 고관이 된 자에게 자기 출신지를 통할케 하는 사심관(事審官)제도와 지방 호족의 자제를 볼모로 중앙에 머물게 하는 기인(其人)제도를 통해 호족들을 견제하는 정책이 그것이었다. 두 번째는 오랜 전쟁에 지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백성들에게 걷는 세금에도 일정한 정도가 있어야 한다(취민유도·取民有度)’는 조세정책을 통해 세금을 감면하고 불교 행사를 성대하게 열어 민심의 안정과 통합을 이루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전 정권인 통일신라와 차별되는 고려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북진정책을 펼쳐 실제로 영토를 확장했다. 고려는 고구려의 준말.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를 의미한다. 고구려의 그 넓었던 북쪽 영토를 되찾기 위해 북쪽으로 진출하는 정책이었다. 백성 모두가 쉽게 이해하고 따를 정책이었다.

문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애국과 태극기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는 점을 거듭 밝혀 국민 사이 갈등의 골을 메우겠다고 다짐했다. 정치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남다른 생각을 펼쳤다. 문 대통령의 높은 초반 지지율은 여기서 비롯됐다고 본다. 지난 정권 청와대 한 인사는 ’취임 5개월 안에 5년 할 일을 다 준비해놔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만기친람하기보다는 국민 모두가 쉽게 이해하고 따를 정책 만들기에 생각을 집중해야 한다. 천년을 가야 할, 꿈에도 생각지 못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임기 안에 끝나지 않을 일일 것이다.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 훈요십조를 남긴 왕건처럼 후임 대통령 당선자와 단 둘이 앉아 그 천년을 갈 일을 인계인수해 가는 대통령들을 국민들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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