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X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공통점
김 홍열(초빙 논설위원 · 정보사회학 박사)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액티브X 퇴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늦게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액티브X 퇴출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있었다. 당시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하는 천송이 코트 구매와 관련, 해외 구매자들의 본인 인증의 불편함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자 잠시 논의되었다가 실질적 성과 없이 끝나버린 사례가 있었다. 이번에는 분명한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액티브X는 PC 사용이 익숙지 않았던 일부 사람들만 불편하게 만든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민원서류 하나 발급받기 위해서 설치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고 그 과정도 복잡하기만 하다. 어느 정도 진행되다가 다시 첫 단계로 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특정 프로그램만 사용해야 된다는 불편함도 있었다. 누가 이 답답한 것을 만들었는지 가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얻기에 손색없었고 결국 대통령 공약 리스트에 액티브X 폐지가 올라오게 되었다. 이제 다시는 액티브X가 아니어도 쉽게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는 솔루션이 다양하게 등장하기를 바란다.
국가 주도 방식의 장점은 자원의 효율적 분배와 체계적 시스템 운용에 있다. 기업과 시장이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을 때 국가 주도 방식은 분명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이 국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은 결코 국민 편이 아니다. 자율보다는 규제를 선호하고 국민보다는 공무원을 선호한다. 불완전한 자율성에 기초한 민주적 절제보다 확실한 규제를 통한 독재적 시스템을 채택한다. 이런 국가 주도 시스템이 그래도 꽤 오랜 기간 잘 버텨왔지만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가상공간에서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게 되었다. 소위 셧다운제가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청소년 보호법 제26조의 별칭인 셧다운제의 주요 내용은 '인터넷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다. 밤 12시가 되면 게임이 셧다운되니 이제 그만하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라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을 계속하고 싶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부모의 아이디로 접속하거나 서버가 외국에 있는 게임에 접속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 역시 국가가 가상공간을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 대표적 사례다. 처음 입법되었을 때보다는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대표적 독소 조항으로 거론되고 있는 사례다. 게시판 익명제의 일부 폐해를 과도하게 주장하여 신설된 인터넷 실명제는 가상공간을 자율 규제에 의한 정화 작용이 가능한 곳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관리나 규제가 필요한 장소로 규정했다. 주민등록제도의 가상공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에 대한 정부의 효율적 통제와 관리를 위해 제정된 주민등록법처럼 인터넷 실명제 역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시민사회 단체와 인터넷 언론사들이 여러 차례 폐지를 요구했어도 현재까지는 요지 부동이다. 다행히 인터넷 실명제 완전 폐지를 주장한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이제 비정상화의 정상화가 가능해져서 그나마 다행이다.
액티브X는 인터넷이 만들어낸 가상공간을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민원서류 발급이나 금융 거래에서 본인을 입증할 수 있는 여러 솔루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정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금융기관들은 단 하나의 절차만 만들었다. 모든 국민들은 가상공간에서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이미 만들어진 절차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했고 이 절차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서류 하나 발급받을 수 없다. 국가는 지금까지 국민, 기업, 시장이 자율적으로 소통하고 연결되어야 하는 가상공간의 속성을 도외시하고 세밀하게 지시하면서 하나하나 훈육해왔다. 이제 더 이상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유효하지 않다. 새로운 공간에서는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가상공간은 분명 자체 정화 능력이 있다. 간섭과 지원을 분리하기 힘들면 차라리 방임하는 것이 낫다. 혼란스러운 민주제가 선한 독재보다 분명 낫다. 우리는 제도보다는 인간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