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일부터 5일까지 중국 상하이 신국제박람센터(SNIEC)에서 열린 ‘제23회 중국 상하이 화둥 수출입 교역회’에 주최 측인 상하이국제무역촉진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현지 취재를 갔다. 주최 측이 한국 기자를 초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중국은 댜오위댜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영토분쟁으로 일본과 대치 상태였다. 이로 인해 전시회의 외국 국가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 일본관은 썰렁하다 싶을 만큼 참가 기업수가 크게 줄었다.
이 틈을 메워준 것이 한국기업이었다. 한국무역협회가 40여개 참가기업과 함께 한국관을 마련했다. 당시 전시장 내 가장 큰 국가관이었다. 이에 주최 측이 감사의 표시로 한국 기자들을 초청한 것이다.
개막 당일 상하이시 부시장이 예고 없이 전시장을 방문했는데, 한국관에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전시장을 떠난 후 한국 측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 시간이 없어 더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해 아쉽다"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한국 참가기업들은 중국 측의 배려에 크게 만족해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무협이었다. 무협 직원들은 전시회 기간 내내 부스를 지키며 한국관 참가기업들의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전시 둘째 날부터 부스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또 중국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전시회 지원 업무도 현지에서 채용한 아르바이트 직원들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무협 상하이 지부장은 둘째 날 오후 ‘잠깐’ 전시장을 찾았을 뿐이다.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돼 업무 파악하느라 바빴다고 했다. 남은 일정 동안 전시장 내에서 지부장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무협 직원들은 기자들에게 모든 기사를 무협발로, 그것도 좋은 내용만 써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무협이 잘했다는 이미지의 기사가 나가야 기업들에게도 이득이고 현장에 온 자신들의 얼굴도 산다"는 게 이유였다. 더 큰 이유는 한덕수 당시 무협 회장이 전시회에 큰 관심을 갖고 결과물을 일일이 챙겼기 때문이다.
셋째날에는 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다. 행사를 총괄한 상하이국제무역촉진위원회 총괄책임자가 무협 직원들과 한국 측 운영요원, 취재진들에게 감사를 겸한 오찬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오찬 장소에 온 직원은 무협의 말단 직원 한 명뿐이었다. 다른 무협 직원들은 다른 일정이 생겼다며 오찬 시작 1시간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불참을 통보했다.
취재진조차 무척 당황했고 위원회 총괄책임자는 간접적으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무협 직원끼리 별도로 편하게 회식을 갖기 위해 약속을 깬 것이었다. 대단한 결례이며 국제적 망신이다.
당시 만난 참가 기업인들 가운데 몇 분들과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무협 직원들이 이제는 잘하느냐고 물어보면 "바뀐 것은 전혀 없다"고 한다.
기자로서 무협을 취재한 지 벌써 17년째다. 그동안 중소 수출업체들에게 숱하게 들은 말이 무협은 무역업계의 ‘갑중의 갑’이라는 얘기다. 무역기금을 바탕으로 정부를 대신해 다양한 수출지원제도를 제공하는 무협이 이를 빌미로 회원사들에게 '왕'으로 군림한다는 지적이다. 그런 무협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변함없이 중소기업 해외시장 개척 지원업무를 맡게 된다.
한 중소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무협은 한때는 수출진흥의 기수로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의미가 퇴색됐다.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회원사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