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최근 기자와 식사를 함께 한 정부의 문화 관련 기관 한 인사는 만나자마자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난해 문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됐지만, 그 여파로 문화 관련 예산이 대폭 줄었을 뿐 아니라 사회적인 시선 역시 여전히 곱지 않다는 게 요지다.
지난 21일에는 대선 후보들의 문화 예술 정책을 엿볼 수 있는 간담회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의 주최로 열렸다. 지난 정권 동안 블랙리스트로 얼룩졌던 문화 예술계였던 만큼 이번 간담회를 통해 앞선 정부보다 진일보한 정책을 기대했지만 이 역시 생각보다 부족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예총은 ‘예술문화 강국 도약’이란 비전 아래 4차 산업혁명을 예술문화융성으로 선도하고 예술문화인의 자생력 강화와 자립형 일자리 창출을 위해 5년간 2000억원씩 총 1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각 정당의 문화 예술 정책 담당자는 이를 최대한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정부의 지원 부족에 대한 성토는 오페라계에서도 터져 나왔다. 지난 25일 열린 제8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기자간담회에선 정부의 예산 지원을 호소하는 오페라인들의 간절한 바람이 이어졌다. 이소영 솔오페라단장은 민간 오페라단의 재정적 어려움을 지적하며 한국에서 오페라 장르가 살아남기 힘든 이유를 조목조목 나열하기도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없어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혹은 블랙리스트로 인해 예술인들을 색안경을 끼고 봐서도 안 된다. 여전히 대다수의 예술인들과 예술단체들은 순수와 열정을 페이로 삼으며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다. 시대의 화두가 된 4차 산업혁명도 문화 예술 콘텐츠가 한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3일 진행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나온 한 후보자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발언은 경악을 금하지 못하게 했다.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역대 어느 정권에서나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사라졌지만 문화계는 여전히 안녕하지 못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