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간위의 집' 김윤진이라는 레퍼런스

2017-04-0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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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간위의 집'에서 미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김윤진. [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언제나 독보적이었다. 김윤진(44)은 여성 캐릭터 혹은 장르에 있어 늘 레퍼런스((reference)를 만드는 배우였으니까. 데뷔작인 영화 ‘쉬리’ 명현부터 미국드라마 ‘로스트’의 선화, ‘6월의 일기’ 윤희를 지나 ‘세븐데이즈’ 지연에 이르기까지. 그는 영화계에 없던 새로운 캐릭터와 장르를 개척해나갔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시간위의 집’(감독 임대웅) 역시 마찬가지다. 김윤진은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하우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또 한 번 관객에게 새로운 레퍼런스를 제시했다. 자신의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계 전체를 볼 줄 아는 폭넓은 시선. 김윤진은 그래서 더 새롭고, 낯설다.

영화는 남편의 죽음 및 아들의 실종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미희가 2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며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룬다. 김윤진은 남편과 아들을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 미희를 연기, 25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국제시장’ 이후 또 한 번 노인 연기에 도전했어요. 당시에는 예산이 넉넉해서 분장은 더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만들었지만 연기적인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이번에는 반대로 예산이 부족해서 특수 분장이 다소 부족하더라고요. 하하하. 연기적인 부분에서 빈칸을 채우고자 했죠. 표정부터 목소리를 만드는 것까지 고생이 많았어요.”

영화 '시간위의 집'에서 미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김윤진. [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그는 아쉬운 점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성격이었다. ‘국제시장’에서 선보인 노인 연기에 대한 착오를 인정하고, 또다시 노인 연기를 하게 되었을 땐 그 간격을 좁히고자 노력했다.

“‘국제시장’을 연기하면서 현실과 영화적 현실은 다르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요즘 60대분들은 꼬부랑 할머니 같은 모습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실제 60대를 스크린에 옮겨놓았을 땐 ‘할머니 같지 않다’, ‘변화가 없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할머니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미희는 영화적 현실감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극 중 미희가 후두암을 앓고 있다는 설정이 나온 거예요.”

김윤진은 관객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노인 같은 모습”을 만들려고 했다. 현실과 영화적 현실의 갈등인 셈이었다. 숱한 고민과 갈등 끝에 김윤진은 미희가 후두암을 앓고 있다는 설정을 만들게 됐다. “노인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다.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도구이자 미희에 대한 동정표를 얻고자 했던 장치였죠. 후두암이라는 설정으로 더욱 극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고 관객들도 미희를 응원하게 되잖아요. 늙은 미희, 젊은 미희에 대한 공감이 빨라야 승부를 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설정으로 인해) 여러 가지 작용이 일어날 거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후두암 설정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설정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요.”

노인 연기는 고달팠다. 섬세한 표정 연기부터 쉰 목소리, 격차가 큰 감정 연기까지 신경 쓸 것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연기 데뷔 21년 차 베테랑 배우지만 “테크닉이 부족한 것 같다”며 자책할 정도로, 쉽지 않은 연기였다.

영화 '시간위의 집'에서 미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김윤진. [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거기에 ‘시간위의 집’은 혼자 끌고 가는 신이 많았으니까. 호흡이 긴 신을 보면서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스트레스도, 의심도 많았죠. 특히 초현실적 공간에서 펼치는 연기는 음악도, 효과음도 없으니 ‘남이 보면 우습겠다’ 싶기도···.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도 카메라가 돌아갈 땐 백퍼센트 저를 믿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관객에게도 백퍼센트 전달되지 않거든요.”

감정에 몰입하고 계산하기까지 시간이 빠듯했다. 보통 영화들이 40회차를 찍는 것에 반해 ‘시간위의 집’은 25회차라는 짧은 촬영으로 영화를 마무리 지었다. 예산과 시간이 빠듯해 빽빽하게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빠듯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시간도, 예산도 효율적으로 쓰려고 했어요. 그래서 촬영 전부터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만나서 수다를 떨었어요. 영화 얘기, 사적인 얘기 가릴 것 없이요. 그때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고 하고 싶은 얘기도 다 했어요. 현장에서 시간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촬영에 들어가서는 얼굴만 봐도 원하는 바를 알겠더라고요.”

‘6월의 일기’부터 ‘세븐데이즈’, ‘시간위의 집’까지. 김윤진은 수많은 엄마 역할을 맡았다. 각자 다른 모성애를 그려냈고 훌륭한 연기력을 펼쳤지만, 해외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엄마 캐릭터, 모성애 연기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에 김윤진은 공감의 뜻을 밝히면서도 “모성애가 주는 공감은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여자라고 다 엄마는 아니지만, 모성애가 주는 힘은 무시할 수 없거든요. 일종의 무기인 셈이죠. ‘6월의 일기’ 같은 경우, 말도 안 되는 복수를 펼치지만 모성애이기 때문에 이해받고 용서되는 구석이 있잖아요. ‘시간위의 집’도 판타지적 요소가 강한데 모성애 덕분에 허락되는 부분이 있고요. 전 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랑 중 모성애가 가장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김윤진은 여성 캐릭터와 영화계 구조 역시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티켓 파워를 가진 여배우들은 30~40대다 보니 이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모성애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 '시간위의 집'에서 미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김윤진. [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영화가 많이 없어요. 남자 배우들이 10개의 작품을 받고 고를 수 있는 처지라면 우리는 3~4개 정도죠. 그런 상황에서 요즘 트렌드도 남자 배우들이 무리 지어 나오는 작품이다 보니 상황은 더 열악해요. 주인공이 4명이라면 그중 한 명은 여자여도 될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죠. 아직 성공 사례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나와서 그게 트렌드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김윤진은 ‘시간위의 집’의 흥행이 더 간절하다고 말했다. “여자 배우 혼자도 충분히 미스터리 호러 장르를 끌고 갈 수 있다”는 사례를 남기고자 했다.

“저는 늘 그랬어요. ‘세븐데이즈’를 찍을 때도 모두 만류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스릴러가 되겠냐’, ‘여성 주인공의 스릴러라니 말도 안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흥행도 했고 손해도 안 봤죠. 그다음엔 모성애를 부각하는 스릴러가 많이 나왔어요. 더 거슬러 올라가서 ‘쉬리’의 경우는 최초로 여성 형사가 총을 들고 액션을 했고요. 여자 형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액션을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죠. 이렇듯 하나가 잘되면 하나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거예요. 불편한 것들, 인식도 못 했던 것들을 톡톡 건드려주면 가능성이 생기고 도전해볼 수 있어요.”

편견을 허무는 것은 김윤진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2004년 미국드라마 ‘로스트’를 촬영할 때도 그랬다. 그는 “미국드라마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것인데, 미국인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없었다”며 출연을 고사했다.

“‘로스트’ 의상 피팅을 하러 갔는데, ‘남편의 하인 같은 역’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한국 여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출연을 거절했어요. 하지만 감독님께서 스토리라인을 보여주시면서 ‘모두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시작, 점차 발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면서 ‘나를 믿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써니 캐릭터에 대한 믿음을 주셨어요.”

영화 '시간위의 집'에서 미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김윤진. [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다양하고, 풍성하며 독보적인 필모그래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활발한 활약을 펼치는 그에게 “필모그래피에 대한 자부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럼요. 제 필모그래피에 자부심이 있죠.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도 제작사 등에 피해준 것 없이 긍정적인 효과를 냈으니까요. 그에 대한 자부심은 분명 있어요. 거기에 아직도 ‘시간위의 집’ 같은 작품을 할 수 있잖아요? 제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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