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직 고위 외교관이자 현재 중국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왕잉판(王英凡) 전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주경제를 포함한 국내 언론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최근 중국 매체에서 나온 '준단교'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왕 부부장은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이 받을 후과에 대한 질문에 "후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며 "하지만 어떤 후과 인지는 나도 말하기 힘들다. '준단교'가 가장 극단적 발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중국 관영매체 인민일보의 소셜미디어 매체인 '협객도(俠客島)'는 '(한국이) 사드(THAAD)를 배치하면 한중 준(准)단교 가능성 배제 못 해'라는 제하 기사에서 "향후 중국의 한반도 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외교적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경우 북한에는 경제 및 문화적 수단으로 많이 압박하는 동시에 한국에는 정치 및 군사적 수단으로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이어 "국가 관계란 어떤 한쪽에서 행동을 취했을 때 상대가 맞서는 행동을 하면 상황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며 "양국 국민 이익의 관점에서 사드배치로 인한 후과는 있겠지만 그것이 심각하지 않은 쪽에서 마무리 될 수 있어야 양국 모두에 좋은 것으로, 현재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사드 배치가 시작된 지금, 철회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의 안보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제한 뒤 "중국 정부는 사드 문제에 있어서 무척이나 명확한 입장이며 확고부동하다. 우리는 후과가 있다는 걸 알고 가급적이면 심각한 후과가 나타나지 않길 기대한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 했다.
사드배치에 따른 '보복'을 중국에서는 '대응'이라고 하는데 25년 한중관계 발전을 역행하는 행위가 아니냐는 지적에는 "안보와 경제는 두 수레바퀴와 같다"며 "25년 경제·문화 등 다방면에 좋은 관계를 맺고 온 한국이 왜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반하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인들은 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며 "중국 여행객의 감소라던지 롯데 사태 등은 민심의 자발적 표출"이라고 사드 보복이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또 중국의 고사성어인 '물극필반(物极必反·뭐든지 극에 달하면 역효과가 난다)을 들며 사드 배치에 따른 현재 중국 내에서 일고 있는 일련의 혐한(嫌韓)분위기를 설명했다.
왕 부부장은 "역사적으로 어떤 국가와 민족은 외부로부터의 압박을 받을 경우 내부적으로 더 단결된다"며 "중국도 마찬가지로 외부적 압력이 있을때 한 마음이 돼 외부적 압박에 맞서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일부터 한국을 방문 중인 왕 전 부부장은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중국 외교부 아주국장을 역임했다. 이번 왕 부장이 이끈 대표단에는 왕 전 부부장 외에 류구창(劉古昌) 전 외교부 부부장, 두치원(杜起文) 전 중앙외사판공실 부주임 등 고위급 전직 관료 두명도 포함돼 있다.
앞서 우리 외교부는 이들 중국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 대표단이 방한 둘째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임성남 제1차관과 만나 이같은 중국측의 입장을 전달했지만 서사드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만을 재확인 했다고 외교부가 밝힌 바 있다.
왕 전 부부장을 포함한 이들 대표단은 이에 앞서 이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외교자문단 일원인 석동연 전 외교부 재외동포영사대사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경력의 위성락 전 주 러시아대사 등 전직 고위 외교관과도 면담했다.
방한 둘째날인 21일에도 전직 외교관들로 구성된 비영리 사단법인인 한국외교협회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는 등 사드로 불거진 한중관계에 합의점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왕 전 부부장은 20일부터 3박4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오는 23일 한국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전직 중국 고위 당국자의 이번 방한이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드 배치와 관련한 '소프트(soft, 부드러운) 여론전'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말 중국 외교부 현직 당국자가 우리 정부의 초청없이 방한, 정치권 요인들을 잇달아 만나가며 사드 여론전을 펴 국내에서 '내정간섭'아니냐는 비판을 야기한 바 있다.
다만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번 왕 전 부부장 방문에서 한국 정치인을 만나는 일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왕 전 부부장은 주유엔 중국대사, 아시아 담당 특사 등을 역임한 중국의 외교 전문가로 중국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2015년 한·중 외교부 공동 주최로 중국 광둥성에서 열린 '한중 1.5 트랙 대화' 당시 중국 측 인사로 참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