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성환 기자 = 16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인상으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가 0.25%포인트로 좁혀졌다. 여기에 연내 두 차례 이상 추가 인상이 예고되면서 한·미 간 금리 역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우려에도 한국은행은 섣불리 기준금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이다. 금리차 축소로 인해 자본 유출 가능성이 커진 것을 감안하면 한은 역시 금리인상을 준비해야 하지만 가계부채, 경기 부진 등 국내 경제 사정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 연준 올해 2회 추가 인상… 금리역전 따른 자본유출 우려
미국 연준은 15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를 종전 연 0.50~0.75%에서 연 0.75∼1.00%로 0.25%포인트 올렸다. 이에 한은 기준금리(연 1.25%)와의 차이는 0.25%포인트로 줄어들었다. 앞으로 연준이 0.25%포인트씩 두 차례 추가 인상하면 한·미 간 정책금리 수준이 뒤집히는 셈이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연준이 올해 두 차례 이상 추가적으로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금리인상 결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점진적' 인상 의지를 밝히며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었다.
한·미 간 금리차가 역전되면 국내 금융시장에서 대규모 자금 이탈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보고 들어왔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본을 대거 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금리인상으로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까지 더해지면 유출 속도는 더욱 가팔라지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국 1년 국채금리가 25bp(1bp=0.01%포인트) 상승하면 한국의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은 3개월 후 3조원이 유출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지난 8개월간 금리를 동결하며 완화 기조를 유지했던 한은이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외국인 자금 이탈 속도가 빨라지면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하반기부터 한은이 본격적으로 금리인상을 논의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6일 임원회의에서 "한은 정책에 영향을 줄 만한 여건 변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며 통화정책 변화 가능성까지 거론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 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미국 금리인상 속도를 감안해 한은이 금리 정책을 펴야 하는데 올해 연준의 금리인상을 3~4회로 본다면 연말에는 한은도 금리를 높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1300조 가계부채 발목… 인상도 인하도 어렵다"
문제는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한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시장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의 이자 부담을 높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은까지 기준금리를 올리면 빚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다중채무자·저신용자·저소득자 등 취약차주의 경우 큰 충격이 불가피하다. 아울러 경기 변동에 민감한 자영업자 역시 생계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
또한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도 한은의 운신 폭을 좁히고 있다. 소비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달 실업률이 5.0%로 2월 기준으로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경제 회복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 금리인상뿐만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조치 등 대외 위험 요인들이 우리 경제를 둘러싸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한은이 통화정책 이외에 금리 상승기에 위험군으로 꼽히는 취약가구, 중소기업, 한계기업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식 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추가로 인상하면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큰 폭으로 올릴 수 있어 부동산 폭락, 가계부채 문제, 한계기업 부실 등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면서 "한은은 시중금리를 안정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적절하게 돈을 공급하는 등의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장병화 한은 부총재는 이날 통화금융대책반회의 직후 "미국이 금리를 올렸다고 한은이 기준금리를 기계적으로 올리는 것은 아니다"며 "미국의 기준금리는 중요한 참고지표지만 국내 관점에서 기준금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