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광장 뿐 아니라 서울 도심으로 영역을 확장한 17차 촛불집회가 마무리됐다. 언제나 그렇듯이 평화로운 집회로 마무리되면서, 새로운 역사의 장(章)은 자꾸 늘어난다. 써야 할 말도 덩달아 늘어난다.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마음은 새롭게 생겨났다 그 때 그 때마다 달라지는 시민들의 표정들을 보면서 동지감과 함께 친밀함도 켜켜이 쌓여간다.
1월이 되고서도 정국은 여전히 안개 속을 헤어나지 못했고, 대선 주자들의 여론조사 동향을 통해 국민들은 내밀스러운 속마음을 내비쳤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추이는 대통령 대리인단의 교묘한 기술과 재판부의 버티기가 힘겨워 보이기 시작했다. 집회에 나서기 전날 시작된 불면의 밤이 지나고 다시 2월이 왔지만, 광장은 다시 열기로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탄핵이 기각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영리했다. 이미 그런 분위기를 읽고 있었는지 모른다. 집회를 주최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고립이 심화되는 것처럼 보였고, 태극기 집회를 내세운 보수층의 결집은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져 탄핵기각을 확신하는 것처럼 비쳤다. 그동안 속내를 숨기던 보수 언론들이 때맞춰 결기를 보여주며 국가의 안정을 빌미로 탄핵 기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2월 11일, 15차 촛불집회부터 분위기가 점차 달라졌다. 음력으로 정월대보름에 열린 이날 촛불집회는 설 연휴 이후 열렸던 14차 촛불집회와도 사뭇 달랐다.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대선놀음’을 잠시 접고 다시 촛불 곁으로 온 것도 15차 촛불집회부터였다.
광화문광장으로 장소가 좁혀지던 시민들의 공간이 다시 주변 도로로 확산됐다. 재벌개혁의 목소리가 높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도 도마에 올라 영장 재청구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촛불의 힘이 다시 거세진 것이다. 촛불열기를 다시 거세게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과 보수층을 중심으로 확산된 탄핵기각 정서였다. 시민들은 다시 주말을 반납하고 거리로 나섰고, 집회는 더 다양해졌으며, 광화문광장에는 신명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15차 촛불집회를 기화로 ‘다시’ 거리로 나서기 시작한 시민들은 16차 촛불집회와 17차 촛불집회도 빠지지 않았다. 17차 촛불집회는 ‘다시’ 100만 명의 시민을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불러 모았다. 전국 집중 집회에 걸맞게 시민들은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광화문광장을 찾는 등 조금의 틈도 주지 않게 위해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맸다.
시민들은 광장에서 위대한 단결과 평화로 탄핵 인용과 특검 연장을 소리 높여 외쳤다. 그 날,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아이가 자라 아빠는 “그때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어오면, “그 때, 그 자리에 시민들과 함께 했다”는 답을 자신 있게 할 수 있게 된 시민들이 부쩍 신이 났다.
광장은 꿈꾼다. 찬 바다 밑에서 아직도 신음 중인 세월호를 길어내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노동자, 농민, 빈민들이 사람대접 받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오욕으로 점철된 역사가 다시 세워지고, 말이 가진 가장 정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주의가 우뚝 서는 것을.
광장은 현실이 된다. 모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으로 바뀐다.
광장은 다시 꿈꾼다. 우리의 자식 세대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살 것이다. 우리에 닥치는 모든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 낼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 아래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다.
우리 모두가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화시켜, 미래에 물려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매주 토요일 광장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다. 4개월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고,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것이다.
광장에 빼곡하게 채워지는 걸음걸음마다 행복의 시간이 채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본 적이 없지만 살아가고 싶은 세상은 무엇인지 안다. 앎에서 끝나지 않고 현실에 투영시키고, 나만 아닌 우리가 함께 하는 세상.
촛불은 이제 우리를 향해 밝혀질 것이다. 우리 내면에 있는 모든 어둠을 물리치는 시간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 날에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