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손을 잡는 것은 국정농단 세력과의 협력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당을 포함시킨 대선후보 단일화는 원칙 없는 패배로 가는 길이다.”
탄핵 정국이라는 혼돈 속에서 대선을 앞둔 가운데 모병제, 사교육금지 등 파격적인 정책을 던지며 ‘진정한 보수’를 자임하는 남 지사를 아주경제가 경기도청에서 만났다.
- 보수단일화를 두고 유승민 의원과 논쟁이 한창인데, 확고한 생각인가?
“이 문제를 두고 보수단일화라고 말하지 말고 국정농단 세력과의 단일화라고 불러 달라. 보수단일화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손을 잡는 게 문제다. 여전히 친박(친박근혜)세력이 주류인 새누리당과 협력하는 것은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다. 선거에서 제일 좋은 결과는 원칙 있는 승리다. 가장 나쁜 건 원칙 없는 패배다. 지금 나오는 보수후보 단일화는 원칙없는 패배로 갈 가능성이 크다. 바른정당과 새누리당의 가장 큰 차이는 탄핵에 대한 찬반이다. 탄핵 찬성의 명분은 갖고, 반대하는 세력과 손을 잡겠다는 것인데 새누리당과 합친다면 원칙이 없어지는 셈이다.”
- 현재대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기울어진 운동장' 상황을 피할 수 없다. 보수진영이 현저하게 불리한데 묘책이 있나?
“묘책은 없다. 지금은 정권 심판 성격이 강한 대선 국면인 게 사실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선주자로 거론되지만, 이 상태로는 보수진영에서는 어떤 후보가 나와도 20%의 지지율을 넘기 힘들다. 황 대행이 새누리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 한다면 결국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돕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 구도를 깨기 위해선 보수와 진보 진영의 대결이 아닌, 낡은 정치와 새 정치의 구도로 전환을 해야 한다. 친박과 친문(친문재인)이라는 두 패권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들의 대연정을 이뤄야 한다. 이것만이 바른정당 입장에서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다.
- 최근 정치권이 대연정 논란으로 시끄럽다. 가장 먼저 연정을 도입했는데 임기 중 연정의 성과가 있다면?
“연정의 가장 큰 장점은 정치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불확실성이 줄어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연정을 실시한 결과, 도정이 안정됐다. 경기도 내의 수많은 일자리 창출 성과도 모두 연정을 통해 이뤄진 결과다.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2015년 8900여개 신규 일자리가 생겼고 매출액 70조원, 7만2000여명 임직원이 일하고 있다. 2017년도 예산안도 법정기일보다 3일 앞당겨 의결해 의회 민주주의의 모범사례 보여줬다. 한마디로 대연정은 일자리 해결 방안인 셈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해 경제인들에게 투자 의욕을 주고 이것이 바로 일자리로 이어진다. 국가 단위에서 보면 특히 통일정책은 일관성이 생명이다. 오락가락 정책이 아닌 30년을 내다보는 통일정책은 연정이 아니면 실현이 불가능하다.”
- 대선 출마를 선언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공약을 꼽으라면?
“사교육폐지 공약이 타 후보에 비해 가장 차별화됐다고 본다. 사교육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마약과도 같다. 누군가는 멈춰 세워야 하기에 제가 호루라기를 불겠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연간 18조~30조원을 사교육에 쓰고 있다. 2000년에 헌재에서 과외금지조치가 위헌판결이 난 적이 있다. 그때보다 더 비정상적으로 커진 사교육시장을 바로 잡기 위해 사교육 폐지에 대한 국민 의사를 물어보겠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사교육 폐지를 위한 국민투표 실시를 제안한다. 국민 다수가 사교육 폐지에 동의하면 과거 헌재의 위헌 판결을 넘어서는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교육계 김영란법’을 만들겠다. 공교육 정상화의 대안도 있다. 복잡한 입시 제도를 수능 위주로 간소화하고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하겠다. 공교육 플랫폼으로 사교육을 수용해 모바일 통한 온라인 교육도 강화할 생각이다.”
- 문재인 후보가 일자리 공공부문 일자리 80만개 창출 공약을 내걸었는데, 이에 대해 평가하자면?
“한마디로 낡은(old) 정책이다. 과거에는 국가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식의 정책이 통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예산만 소요되고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니다. 안철수 후보의 시장주도 일자리 창출도 문 후보에 비해선 덜 낡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방법이다. 정부가 플랫폼을 깔아주고 민간이 들어와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이게 바로 4차 산업혁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나아가 새로운 시스템에 의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좋은 일자리의 핵심이다. 대통령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양질의 일자리는 여러 정책의 하모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정치, 경제, 안보 이 3가지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 일자리로부터 오는 성과가 성장이고, 복지고, 행복이다.”
- 어떤 대선 후보도 내놓지 않은 모병제 이슈를 던졌다. 구체적인 소요 예산을 마련하기 위한 대안은?
“어떤 당에서는 모병제 전환을 위해 최소 7조원이 소요된다며 예산을 문제 삼는데, 그건 한 번에 전환할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제가 제시한 공약은 점진적인 확대다. 당장 2023년부터 인구절벽 현상으로 인해 전체 군인의 약 5만명 이상 부족하다. 먼저 5만명에 대해 36개월짜리 직업군인으로 선발해 매달 2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 5만개가 더 생기는 효과도 있다. 그 전에 최저시급의 20%부터 시작해 50%까지 올리면 5년간 소요 예산이 약 6조9000억원다. 법인세를 소폭 상향하고 비과세 등을 조정하면 매년 3~4조원 가량 세수가 증가한다. 5년이면 대략 15조원이 확보된다.
- 같은당 유승민 의원은 모병제에 대해 예산의 문제보다는 ‘정의의 문제’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지금 같은 징병제가 정의롭지 않다. 부유층들은 군 면제, 보직이동 등 꼼수를 쓰고 있지 않나. 오히려 돈 없는 사람만 군대에 끌려가고 안 좋은 보직에 배치된다. 그런 군대를 직업의 선택으로 전환하자는 게 왜 정의에 어긋난다고 하는가. 정책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군대를 신분상승의 사다리로 만들어 디자인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일반 사병 입대도 9급 공무원으로 만들어 줘야한다. 예를 들어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 등은 군대 훈련기간을 무조건 거친 후 선발하도록 바꿔야 한다. 미군처럼 대학 진학 시 지원도 해주고, 여성에게도 직업 선택의 기회가 넓어지는 셈이다. 또 하나는 더. 부유층 자녀들이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을 경우, 고위 공직에 못 올라가게 해야 한다. 국회의원 공천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군대에 가는 걸 명예롭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방치해놓고 정의롭지 않다고 지적하는 건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변명이다. 유일하게 인구절벽을 대비한 정책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비판만 하는 사람들의 대안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조세제도 개편을 위해서 법인세 인상 논쟁이 한창인데, 이에 대한 견해는?
“법인세 인상은 ‘정치 논쟁’만을 위한 아젠다의 성격이 있다. 일단 명목상 세율보다는 실효세율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법인세 인상보다 공제 제도 정비를 통한 세수 확보가 더 중요하다. 민주당은 법인세 인상으로 얻을 수 있는 추가 세원이 3~4조원이라고 하는데 현재의 법인세 제도를 보완하면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 오히려 공제 제도를 잘 정비했을 때 기업들의 세금을 제대로 걷을 수 있다. 올해 법인세 세수가 증가한 것도 지난 몇 년간 법인세를 재정비 했기 때문이다. 증세문제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재정 집행의 투명성, 증세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공감 속에서 다뤄져야 한다. 단순히 세금을 더 거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사회적 불평등은 근본적으로 대·중소기업의 격차, 정규직·비정규직의 격차 등에서 비롯됐다. 증세를 통한 재분배 정책에 앞서 중소기업의 성장 지원,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해소 등이 먼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 야권의 다크호스인 이재명 성남시장에 대해 평가하자면?
“이 시장은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과 분노를 사이다처럼 뻥 뚫어줬다. 다만 이것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대통령 탄핵까지는 과거청산이었고, 이 시장은 국민들에게 가장 두드러진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미래비전으로 본다면 대선후보로서 국민들이 판단하고 평가할 만한 것들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
-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루즈벨트를 꼽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본받고 싶나?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을 정치적 롤 모델로 삼고 싶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정치와 경제 두 면에서 금수저였다. 이미 자신의 삼촌이 대통령을 지냈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집권 후 미국 중산층과 서민층을 위한 정책을 펴서 미국 중산층이 늘고, 정치적 갈등이 적은 ‘압축 성장의 시대’를 열었다. 저도 우리 사회 어렵고 힘들어 하는 분들을 배려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만들어 드리는 나눔의 정치를 하고 싶다”
◆ 남경필 경기지사 프로필
△1965년 수원 출생 △경복고 △연세대 사회사업학 졸업 △예일대 경영대학원 졸업 △경인일보 사회·정치부 기자 △15·16·17·18·19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수석 부대표, 대변인, 상임운영위원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34대 경기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