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반기문 전 총장은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여겨졌고 보수정권이 앞으로 5년 더 연장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해 말 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이런 전망을 단숨에 사라지게 했다. 2달 넘게 평화적으로 진행된 촛불집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통과까지 이끌어냈고 전 세계 언론은 한 목소리로 한국민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촛불집회는 단순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만 분노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살인적인 경기침체와 취업난, 고용불안, 이를 완화하거나 해결하기는 커녕 더욱 심화시키는 정부의 실정, 정유라 입시ㆍ학사 특혜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국 사회 특권층의 부도덕성과 타락상 같은 그 동안 쌓인 적폐에 대해서도 분노해 지속되고 있는 것이고 이런 적폐를 제거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열망이 바로 촛불민심이다.
그런데 반기문 전 총장은 귀국 후 이런 촛불민심을 존중하기는 커녕 전혀 읽지 못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여러분이 해외 진출을 해서 일이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어려운 곳에 가서 해야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는 말은 반기문 전 총장이 한국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살인적인 취업난과 고용 불안 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에 힘을 실었다. 이는 반기문 전 총장 지지율 하락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세론 확산으로 이어졌다.
반기문 불출마를 불러온 결정적인 계기는 반기문 전 총장의 촛불민심 비판 발언.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달 31일 마포캠프 사무실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촛불 민심에 대해 “제가 지나면서 보니 이 광장의 민심이 초기에 그런 순수한 뜻보다 약간 변질된 면도 없지 않다. 다른 요구들이 많이 나오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면은 좀 경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제가 좀 조심스럽게 주시하고 있다”며 “플래카드라든가 외치는 구호 이런 것이 제 생각에는 다르다. 저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TV 화면이나 이런 것을 보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촛불민심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이 말은 바로 국민들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결국 반기문 전 총장 불출마를 강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1일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기문 불출마에 대해 “그분이 시대정신을 잘못 읽고 계시더라. 예를 들면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잘 되기를 빕니다'라고 말한 것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반 전 총장에게) '파이팅'을 외친 걸 보고 국민이 뭐라고 느꼈겠느냐. 그래서 그 좋던 지지도가 추락한 것”이라며 “반 전 총장과 만났을 때 '확 바꾸시라. 변신 없이는 절대로 안 된다. 박 대통령을 이어받겠다면 새누리당으로 가시라'고 했는데, 거기로는 안 가겠다더라. 그래서 좀 바뀌나 싶었는데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는 발언을 보고 끝나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조국 교수는 1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반기문 불출마 선언에 대해 “촛불이 기름장어를 구워버렸다”며 “어느 누구건 촛불민심을 비방, 조롱, 왜곡하는 자는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