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중학교 2학년 때 학급 반장은 담임으로부터 반 통솔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 심지어 채벌까지도 말이다. 반에서 폭행 사태가 나거나 교실 분위기가 정숙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면 반장은 각목을 들었다. 먼저 부반장이 반장을 20대 때리고 나서 반장이 부반장을 똑같이 20대를 때렸다. 눈속임 전혀 없이 둘은 서로를 정말 힘껏 때렸던 것 같다. 그리고 나면 69명에 달하는 급우들을 반으로 나누어 반장과 부반장이 10대씩을 때렸다.
동급생에게 시시때때로 채벌을 당했다는 건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소설속 ‘일그러진 영웅’이나 행할 것 같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자의 기억 내에서 당시 급우들은 전혀 불만이 없었다. 그들이 담임에게 위임받은 절대권력을 쥐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얼굴이 일그러질 때까지 자진해 20대를 맞은 반장이 10대를 때리는 데 어떤 불만이 있을 수 있었을까.
‘청탁금지’란 마치 절대반지와도 같은 절대명분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45년을 살면서 가끔 빨간불에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 동승자에게 타박을 들은 것을 빼면 불법 행위의 뚜렷한 기억이 없는 데 식사할 때마다 법의 경계를 신경써야 한다는 건 기자에겐 분명 짜증이 나는 일이다.
‘그동안 얼마짜리 저녁을 먹었길래 3만원이란 한도가 불편한가?’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다만 기자가 앞선 수백, 수천 명의 선배들이 걸어왔던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금의 면죄부가 될 수는 있겠다.
진짜로 짜증이 나는 건 3만원 한도 계산 등의 성가신 업무가 아니라 그 것을 계산하면서 스스로가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계산 과정의 성가심은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면서 겪어야 하는 과도기적 불편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체 없는 느낌, 자존심에 대한 상처엔 화가 난다.
연일 쏟아지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뉴스를 접하면서 분노 게이지는 더욱 상승한다. 혐의 단계이긴 하지만 기업합병에 대한 청탁 대가로 수백억원이 오갔던 게이트 앞에서 담당 경찰에게 떡을 보낸 피고소인이 9만원의 과태료를 물은 사건은 심지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직무정지를 당한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앞두고 출입기자들을 불러 모아 언론 플레이를 한 건 그 자체로 직권남용이다.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최순실은 일개 지인이고, 그 지인은 11개에 달하는 모든 혐의를 부정한다. 그의 딸 정유라도 모든 사태는 엄마가 시킨 일이라고 한다.
분노에 짖눌리고 무기력감에 휘청이는 국민 앞에서 게이트의 주인공들은 법의 그물을 피해가기 위해 고용된 변호인단이 짜놓은 각본대로 대사를 읊는 메쏘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지도층이 똥덩어리보다 더 썪었는데 3만원짜리 메뉴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은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든다.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는 진실조차 규명하지 못하면서 4만5000원어치 떡을 돌렸다는 이유로 9만원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 검찰도 어쩌면 자괴감을 느낄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무능하고 부패했다고 국민의 불법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옆으로 기는 게도 자식에겐 똑바로 걸으라고 할 수 있고, 똥 묻은 개도 겨 묻은 개를 더럽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학창시절 반장이 먼저 스스로 20대를 맞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덩치 좋은 친구들이 ‘네가 뭔데’라며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을까. 중학교 2학년에 불과했던 당시 그 반장 녀석이 통치의 기술 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보다 몇 수는 위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