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 산업사회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아마도 ‘계량화’일 것이다. 기계와 인간을 숫자로 대상화해 관리하면서 우리사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공장에 컨베이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비로소 시간당 생산량을 예측·관리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회사 장부에 사원들은 사번에 따라 체계화되고, 등급별로 분류됐다. 그에 따른 연봉은 사회에서 그 사람의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유용한 지표가 되고 그에 따라 결혼 상대와 거주 지역이 달라진다. 거주 지역이 달라지면 자녀의 학군을 나타내는 숫자가 달라지고 개천에서 난 소수의 용들을 제외하면 계급은 십중팔구 대물림된다. 이마에 보이지 않는 낙인이 찍혀 있는 셈이고 사람들은 평생 낙인을 관리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8학군에 살고 1류대를 나와 1등급 연봉을 받기 위해 말이다. 산업화는 이 과정에서 가속이 붙었다.
대량 해고는 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상당히 큰 상처다. 특히 서글픈 것은 인력 구조조정이 개량화의 편의성 때문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적 악화의 책임을 떠안은 경영진은 가시적인 구조조정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불행히도 인력 구조조정은 숫자화 하기 가장 쉬운 대상이어서 경영자는 너무 쉽게 그 카드에 손을 댄다. “1만명의 직원 중 20%인 2000명의 직원을 줄였다. 그로 인해 연간 1500억원의 인건비 감축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는 식이다. 오너와 주주들에게 가장 임팩트한 보고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계량화의 유혹에서 기계에게 인간이 밀리는 것은 인간이 계량화할 수 없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시간에 도넛 1000개를 만드는 컨베이어 벨트를 10개에서 5개로 줄이면 도넛 생산량은 반으로 줄지만, 공장 직원을 절반으로 줄인다고 생산량이 50% 줄지는 않는다. 목표량에 맞춰 인간들은 손발을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동료가 잘리면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이란 게 구조조정에 깔린 경영진의 계산이다.
인력 구조조정은 비용절감을 통해 회생의 기회를 만드는 게 목표다. 그 효과를 100% 무시할 수 없지만 계량화의 그늘에 가리워진 보이지 않는 비용이 간과되는 게 문제다. 구조조정은 나간 사람은 물론 남은 이의 자존감마저 무너뜨린다. 동료의 불행을 보고 돌아서서 가슴을 쓸어 내려야 하는 자신을 환멸하게 되고, 생존이 지상과제가 되버린 이들에게 품위는 뒷전이 된다. 품위와 자존감을 잃은 조직이 3류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최근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한 건설사 직원은 "분위기가 안좋다. 무엇보다 패배감 만연해 있는 게 문제다"고 했다.
인력 구조조정 기획안에 사인을 해야 하는 경영자는 한번쯤 더 생각해봐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계량화된 수익과 계량화하지 못한 비용을 말이다. 그리고 구조조정까지 이르게 한 경영의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