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10월 성공회 의료 선교사 랜디스는 성당 밑에 집을 구해 임시 진료소로 사용하며 의료구호 활동을 펼쳤다.
1891년 10월 16일, 랜디스는 지금의 내동 성공회교회 자리에 인천 최초의 서양병원인 성 누가 병원(St. Luke's Hospital)을 설립했다.

성 누가 병원[1]
하지만 당시 제물포 주민들은 이 병원을 성 누가 병원이나 낙선시의원이 아닌 ‘약대인(藥大人)병원’이라고 불렀다.
약대인은 ‘약을 주는 큰 사람’이라는 뜻으로 랜디스의 의료 활동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표현이었다.
병원 일대의 야산 또한 그의 이름을 따서 ‘약대인산’, 혹은 ‘약대이산’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랜디스와 간호사[1]
그는 거듭되는 과로에 장티푸스까지 발병하여 1898년 4월 16일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인천 북성동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외국인묘지는 1965년 청학동으로 이전).
성 누가 병원은 랜디스 사망 후 잠시 폐쇄되었다가 임시 러시아영사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04년 영국인 웨이어 박사가 의료 활동을 하면서 잠깐 명맥을 이었으나 1916년 그가 인천을 떠나면서 문을 닫았다.
1956년 6월 23일 성 누가 병원 부지에 새 성당을 건립하고 성 미가엘 성당(내동교회)으로 명명하였다.
1990년 대한성공회에서는 내동 성공회교회 내에 그의 공적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