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출의 탑[사진=한국무역협회]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5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한 ‘제53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무역의 날 기념식은 매년 대통령이 참석해 한 해 수출을 위해 전 세계를 누빈 기업인들을 격려하는 대표 행사이자,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의 치적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잔치이기도 하다.이런 무역의날 기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한 것은 1964년(1회) 박정희 대통령과 1989년(26회) 노태우 대통령에 이어 올해 박근혜 대통령까지 총 3명이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은 11월 18일부터 12월 4일까지 서독 헝가리 영국 프랑스 등 동서유럽 4개국을 공식방문(스위스는 비공식 방문)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순방에 나선 당시 동유럽은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동서 냉전 세계를 가르는 철조망을 걷어내는 세기적 변혁이 진행 중이었고, 서유럽은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를 중심으로 통합을 가속화하는 등 세계질서 개편의 주무대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노태우 대통령은 방문국 정상들과의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경제의 대외개방 의지를 설파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참은 앞선 두 대통령과는 사연이 전혀 다르다. 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촉발된 따른 검찰 및 특검조사와 국회 청문회, 200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촛불집회로 분노한 국민들의 퇴진 주장 속에 사실상 직무 수행이 어렵게 되면서 청와대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년까지의 임기를 마치지 못할 것으로 보여, 대통령직에서 맞는 무역의 날은 사실상 올해가 사실상이 마지막이다.
특히, 53년 전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를 위해 시행한 수출 드라이브의 상징으로 무역의 날 행사를 제정했으나 박근혜 대통령 정부가 벌여놓은 대한민국 수출 현실은 참혹하다.
당장 연간 수출액은 58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돼 올해 5.6%로 감소, 4970억달러로 세계 6위에서 8위로 추락할 전망이다.
올해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100만불 이상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업체 수는 1209개사로, 2011년에는 1929개사로 정점을 찍은 뒤 5년 연속 감소했다. 1964년 수출의 탑 제도 제정 후 5년 연속 수상업체가 줄어든 것은 처음이며, 2003년 수출의 탑 수상업체가 처음으로 1000개를 넘어선 뒤, 2004년 1109개사 이후 가장 적은 수이기도 하다.
또한 올해 최고 수출의 탑 수상업체는 한화토탈로 50억불탑을 수상한다. 무역의 날 최고 수출의 탑 수상업체로 50억불탑을 처음 배출한 것이 1993년 삼성전자였음을 감안하면 무려 23년 전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세자리수 억불탑을 받지 못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발한 1997년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오리온전기(2003년 부도)가 10억달러탑을 기준으로 할 때 19년, 21세기 들어서는 2002년 현대자동차가 70억불탑을 받은 이후 14년 만이다.
수출업계의 상황도 좋지 않다. 특히, 오는 6일 열리는 최순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청문회에는 국내 대표그룹 총수 8명이 증인으로 참석하는 초유의 상황을 예고하고 있어 재계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최순실 게이트가 없었더라도 무역의날 기념식 단상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식회사 한국의 수출을 이끌고 있는 기업들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미숙에 발목을 잡혀 사기가 크게 꺾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무역의 날은 연간 수출 1억 달러를 처음으로 달성한 1964년 11월 30일을 기념해 이날로 제정했다. ‘수출의 날’로 출발한 뒤 1987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치러오고 있다. 또한 행사 주관도 공기업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한국무역협회로 바뀌어 민간 주최행사로 성격이 바뀌었다. 2009년에는 연간 무역액 1조 달러 달성을 기념해 날짜를 12월 5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