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가 여성의 운전을 허용할 때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사우디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지 주목된다.
알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알왈리드 빈탈랄 알사우드 왕자는 자신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논의를 끝내자. 이제는 여성들이 운전을 해야 할 때”라고 적었다. 그는 사우디 왕가에서는 드물고 직설적이고 솔직한 발언으로 유명하다.
그는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것은 인권 문제에 해당한다. 운전 금지는 여성에게 교육이나 독립적 정체성의 권리를 빼앗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면 여성의 사회진출을 방해해 경제에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계에서 활동하지는 않지만 미국 씨티그룹과 유럽 디즈니랜드에 투자한 글로벌 투자자다.
알왈리드 왕자는 “100만명 이상의 여성들이 매일 아침 일터로 갈 수 있는 안전한 교통수단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며 여성 운전 금지는 노동자 생산성을 떨어뜨려 사우디 경제에 짐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여성 운전이 허용된다면 외국인 기사를 고용하던 가계는 매월 3,800리얄(약 122만원)을 절약할 수 있고, 이렇게 절약된 돈은 더 이상 외국인 기사의 고향이 아니라 사우디 경제로 흘러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우디는 2014년부터 시작된 유가 폭락으로 재정에 큰 타격을 입었다. 사우디 정부는 경제 재생을 위해 소비세를 도입하고 에너지와 수도 이용 보조금을 줄이고 공무원 급여를 삭감했으며 수십억 달러어치 국채를 발행했다.
사우디 지도부는 이제 경제에서 원유 수출 의존도를 낮춰 경제 현대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올해 사우디는 재정수입의 다변화에 역점을 둔 2030년 사우디 경제비전을 제시하면서 여성의 사회진출 비율을 현재 22%에서 3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포함시켰다.
여성의 인권이 가장 억압받는 나라에 속하는 사우디는 자국민뿐 아니라 외국인까지 모든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다. 여성의 운전을 특정하여 금지하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 칙령은 종종 여성들의 운전이 불법이라고 해석된다.
2013년에는 진보적 여성계를 중심으로 여성 운전 금지를 거부하는 캠페인이 일어나면서 수십여 명의 여성들이 차를 운전하고 사진을 SNS 등에 올린 적이 있다. 그러나 당국은 이를 단속했다.
알왈리드 왕자의 성명이 발표된 이후 SNS 상에서 여성 운전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는 것보다 실업, 빈곤, 주택, 공공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반대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여성 인권 운동가인 사하르 하산 나시에프는 이렇게 영향력 있는 인물이 여성의 운전 허용을 요구한 만큼 앞으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