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중국기업들이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글로벌 컨설팅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올 1~3분기 중국기업의 해외 M&A는 671건으로 지난 해 전체의 두 배에 달했다. 액수로 따지면 1600억 달러로 올해 전 세계 M&A 거래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과거 5년간 중국 기업들이 해외 M&A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6% 남짓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글로벌 ‘M&A 포식자’로 떠오른 중국기업 ‘4인방’을 소개해본다.
◆ 서양원정 나선 안방보험
전 세계 기업을 사들이는 안방보험 그룹의 해외 M&A 행보를 명 나라때 정화(鄭和)의 서양원정에 빗댄 말이다.
안방보험의 '서양원정' 신호탄은 지난 2014년 10월 미국 경제 심장부인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인수였다. 이후 안방보험은 100년 역사 벨기에 피데아 보험사, 260년 역사 델타로이드 은행, 네덜란드 비밧 보험, 미국 피델리티 보험사까지, 미국 유럽 기업을 거침없이 사들였다. 틈틈이 아시아 시장으로도 눈을 돌렸다. 동양생명보험,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을 잇달아 인수하며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2004년 설립된 신생 보험사는 그렇게 단숨에 전 세계 직원 3만명, 고객 3500만명의 중국에서 돈 잘 버는 보험사로 떠올랐다. 현재 안방그룹 총자산은 2조 위안(약 338조원)에 육박한다. 중국 최대 국영보험사 차이나라이프의 80% 수준이다. 업계는 올해 안방그룹이 차이나라이프도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방보험은 M&A 효과도 톡톡히 봤다. 안방보험 품속에 들어간지 1년 만에 비밧 보험은 올 상반기 5억7800만 유로의 순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동양생명보험 역시 인수된지 1년도 안돼 최고의 실적을 거뒀다.
안방보험은 글로벌 M&A 성공을 위해 해외 인재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열린 미국 하버드대 캠퍼스 리쿠르팅 행사에는 좀처럼 공개석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우샤오후이 (吳小暉) 회장이 직접 출격했다. 그는 중국 '개혁개방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의 손녀 사위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안방보험이 워낙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의혹의 눈초리도 적지 않다. 연초 스타우드 호텔 인수전에 뒤늦게 뛰어들었다가 가격만 올려놓고 발을 빼 뒷말이 무성했다.
부채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안방보험의 핵심사업인 안방생명보험은 2010년 총자산 5억 위안으로 시작해 현재 9200억 위안까지 덩치가 커졌다. 그만큼 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자산 대비 부채율이 92.5%까지 달하고는 것. 불투명한 지배구조도 문제다. 앞서 뉴욕타임스는 안방보험의 지분을 우샤오쥔 회장의 친인척 지인 100여명이 39개 유령회사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다만 베일에 싸인 지배구조는 안방보험이 내년 홍콩 증시에 상장하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문화·스포츠기업 싹쓸이한 완다
중국 최고부호 왕젠린(王健林) 회장이 이끄는 ‘부동산 재벌’ 완다 그룹은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싹쓸이 인수하며 ‘문화제국’ 건설을 꿈꾸고 있다. 1988년 부동산 기업에서 시작했지만 문화·스포츠산업을 육성하려는 지도부의 마음을 읽고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시도하는 것.
지난 2012~2015년 완다가 해외 M&A에 쓴 금액만 100억 달러가 넘는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올 상반기엔 160억 달러 어치 M&A를 추진했다.
M&A는 대부분 영화·레저·엔터테인먼트·스포츠 등 문화 기업에 집중됐다. 덕분에 부동산 일색이었던 그룹 수익구조에서 문화사업 비중은 2016년 상반기 기준 24.2%까지 늘었다.
지난 2012년 국제화 원년을 선포한 완다는 적자에 빠진 미국 영화극장 체인 AMC을 첫 인수합병 타깃으로 삼았다. 완다에 인수된 AMC는 그 해 곧바로 흑자 경영에 성공했다. 자신감을 얻은 완다는 본격적으로 기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유럽·호주까지, 완다의 손이 뻗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호주 최대 극장체인 호이츠, 유럽 최대 극장 체인 오디언 앤드 UCI을 잇달아 사들인 완다는 세계 최대 영화관 체인기업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올해 초 영화 다크나이트·고질라 등을 제작한 미국 할리우드 영화제작사 레전더리픽처스(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로 개명)까지 인수한 왕 회장은 할리우드 6대 영화사로 불리는 파라마운트·20세기폭스·워너브라더스·월트디즈니·유니버셜스튜디오·컬럼비아픽처스 인수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스페인의 명문 축구구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월드컵 중계권업체인 인프런트 미디어, 철인3종 경기 주관사 세계트라이애슬론(WTC)등도 집어삼키며 중국의 '스포츠 굴기'에도 힘을 보탰다.
완다는 지난해말 기준 총자산이 6340억 위안(약 107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완다제국 건설의 야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왕 회장은 2020년까지 ‘2211’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2211이란 기업 총자산 2000억 달러, 시총 2000억 달러, 매출 1000억 달러, 순익 100억 달러 실현을 의미한다. 지금보다 자산과 수입을 각각 두배씩 늘린다는 것. 2020년 완다는 해외수입이 그룹 전체 수익의 30% 차지하는 세계 일류 다국적기업을 꿈꾸고 있다.
◆ ‘항공업 포식자’ 하이항그룹
최근 세계적인 호텔기업 힐튼그룹의 최대주주로 우뚝 서며 세계를 놀래 킨 하이난항공(HNA, 하이항)그룹 역시 떠오르는 글로벌 'M&A 포식자'다.
21세기경제보도에 따르면 하이항 그룹이 올해 들어 발표한 해외투자 프로젝트만 12건으로 규모만 250억 달러 이상이다. 지난 2년 사이 300억 달러 어치 M&A 거래를 성사시켰다.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마치 쇼핑하듯 해외기업을 사들인 셈이다.
천펑(陳峰) 회장은 중국 4대 항공사인 하이난항공을 보유한 하이항그룹을 세계적인 관광그룹으로 키울 생각이다. 현재 15%인 해외자산 비중을 2020년까지 40%로 늘려 세계 500대 기업 100위권에 진입하는 게 그의 목표다.
하이항그룹은 브라질 3대 항공사인 브라질 아줄항공사, 포르투갈 TAP 항공사, 호주 버진오스트레일리아 등 항공사 지분을 잇달아 매입했다. 타 항공사와 협력 파트너를 맺기보다는 아예 항공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5대양 6대주'를 연결하는 '하늘길'을 확보 중이다. 한때 영국 맨체스터 공항을 인수할 것이란 소문도 돌았지만 소문에 그쳤다. 이외에 항공 기내식업체, 항공기 리스업체, 항공화물업체 등에 잇달아 인수 혹은 지분 투자하는 등 항공업 M&A에 집중하는 게 특징이다.
여기에 전 세계 1400개 호텔을 보유한 미국 호텔 체인 칼슨에 이어 힐튼 호텔까지 집어삼키며 하이항그룹은 항공과 호텔 사업의 시너지효과를 노리고 있다.
◆ ‘중국판 버크셔 해서웨이’ 푸싱그룹
궈광창(郭廣昌) 푸싱(復星)그룹 회장은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린다. 불황기에 투자하는 걸로 유명한 그의 역발상은 리먼 사태 직후 미국 우량기업에 거액의 투자를 단행한 전설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을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 민영기업 중 하나인 푸싱그룹은 2010년 글로벌 전략을 가동해 첫 번째 해외기업 쇼핑 타깃으로 럭셔리 리조트 클럽메드를 점 찍었다. 유럽 관광업이 한창 불경기일 때 싼값에 지분을 매입한 푸싱은 차츰 지분을 늘리더니 2015년 클럽메드를 집어삼켰다.
딜로직에 따르면 푸싱그룹은 2014~2015년 각각 14건, 17건의 M&A를 성사시켰다. 여기에 쏟아 부은 금액은 100억 달러가 넘는다.
명품·부동산·도소매·의약·철강·스포츠·금융·요식업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투자했다. 그리스 보석업체 폴리폴리, 미국 명품 세이트존, 포르투갈 최대보험사 카이샤 세구로스, 말레이시아 요식업체 스크릿 레시피, 인도 제약사 글랜드 등등. 최근엔 미국 건강기능식품 업체 GNC 인수설도 돌고 있다.
대부분의 M&A는 궈 회장의 투자 철칙인 '인구비례론'에 따랐다. 중국인이 전 세계 인구 22%를 차지하는 만큼 다국적 기업의 중국시장 비중도 22%를 차지하는 게 마땅하며, 그 수준에 미달하는 글로벌 기업은 모두 M&A 가치가 있다는 것.
하지만 뚜렷한 주력사업 없이 닥치는 대로 기업을 인수하는 푸싱의 투자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공격적인 해외 투자에 대한 수익성과 이로 인한 회사 재정상태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세계적인 신용평가사 스탠다드푸어스, 무디스가 푸싱그룹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매기는 이유다.
푸싱그룹도 최근 들어 M&A에도 다소 신중해지는 모양새다. 연초 이스라엘 보험사와 벨기에 은행 인수계획을 돌연 철회했다. 대신 자산 매각을 통해 채무를 상환해 재무제표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