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단빈(但斌) 선전시 동방홍콩투자관리유한공사 회장은 최근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선전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는 과거와 다른 위상, 과거와 다른 경쟁력, 과거와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에는 놀라울 정도로 강력해진 중국의 IT 등 신(新)산업 분야 경쟁력, 자본력, 나날이 늘어나는 혁신기업, 중국 증시 등 금융시장, 그리고 집값 급등으로 거품붕괴 우려를 키우고 있는 부동산에 시장의 시선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관련 뉴스도 쏟아진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곳, 중국 ‘개혁개방의 일번지’, 중국의 변화를 선도해온 1선도시, 최근에는 창업·혁신의 요람이자 글로벌 금융 중심 도시로의 도약을 꿈꾸는 곳, 바로 선전(深圳)이다.
◇ 창업과 혁신으로 중국의 봄날 부른다
1992년 초,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은 경직된 중국 사회 분위기를 환기하고 새로운 발전의 길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상하이·선전·광저우·주하이 등 남부지역을 시찰하며 개혁·개방 확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남순강화다.
이후 중국은 개혁·개방과 함께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길을 걸어나가며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중국 초고속 성장의 중심에 있으면서 중국 변화의 축소판인 선전은 인구 3만명의 작은 도시에서 중국 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채워주는 혁신의 도시로 도약했다.
“개혁·개방과 덩 전 주석에 고맙습니다. 선전에서 창업해 운명을 완전히 바꿨어요”
덩 전 주석의 남순강화 당시 30대 청년이었던 왕웨인(汪月銀)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농민의 아들이었던 그는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선전에서 창업했고 현재 상당한 입지를 확보한 품질검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혁신’을 추구하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선전이 그의 삶에 봄날을 안겨 주었다고 왕 사장은 강조했다.
중국 짝퉁 생산의 본거지이자 핵심 공장이었던 선전은 제조업 인프라와 혁신정신을 기반으로 최근 IT 중심의 중국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입지를 다졌다. 창업을 이끌기 위한 대대적인 인큐베이터 육성 등 선전 당국의 정책적 지원, 오랜 노력으로 개방된 시장,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등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이자 삼성과 애플의 뒤를 바짝 쫓으며 세계 스마트폰 업계 3위로 부상한 화웨이도 선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새로운 분야에 발 빠르게 진출해 세계 민간 드론시장을 장악, ‘드론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다장(DJI)의 고향도 선전이다. 중국 대표 SNS QQ와 위챗, 위챗페이로 성공하고 중국 게임시장의 강자가 된 텐센트의 심장도 선전에 있다.
선전시 당국 통계에 따르면 선전시는 지난해 지역총생산의 4.05%를 R&D 투자에 사용했다. 올 상반기는 약 4.08%에 달하는 351억2000만 위안(약 5조8700억원)을 R&D에 투입했다. 이는 일본의 3.58%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13차5개년 규획(2016~2020)’에 따르면 선전 당국은 오는 2020년까지 이 비중을 4.25%로 높인다는 목표다.
선전 출신 기업도 앞장서서 R&D 투자를 늘리고 기술력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화웨이는 지난해 매출액의 15%에 달하는 92억 달러를 신기술 및 제품 R&D에 투자했다. 지난 10년간 R&D 비용은 총 370억 달러다.
지난해만 중국에서 6200건, 해외에서 2800건 특허를 출원, 각각 2000여건, 1100여건의 특허를 확보했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출원한 특허만 3898건으로 2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삼성 등 기업을 대상으로 한 특허침해 소송 등은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달라진 기술력을 잘 보여준다.
창업지원 액셀러레이터, 인큐베이터를 통해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는 것도 선전의 강점이다.
중국 칭화대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선전시는 중국 도시별 혁신창업환경 순위에서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22일 텐센트가 발표한 ‘2016 인터넷혁신창업백서’에서 공개한 창업도시 순위에서도 3위를 차지했다.
◇ 선강퉁 실시 초읽기...선전, 홍콩과 글로벌 금융도시로
개혁개방 일번지에서 창업·혁신의 요람으로 부상한 선전은 이제 아시아 금융허브 홍콩과 함께 세계적인 금융도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특히 선강퉁(선전·홍콩거래소 간 교차거래 허용) 실시가 임박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혁신·창업의 도시답게 선전 증시에는 중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IT·환경보호·제약·바이오 등 기대주가 많아 투자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다.
중국 당국은 지난 8월 선강퉁 시행을 선언했고 11월 초·중순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혁·개방의 도시답게 앞서 시행한 후강퉁보다 진입 문턱을 낮춰 자유로운 거래를 허용한다.
선전은 선강퉁 실시를 동력으로 글로벌 금융 도시로의 발걸음에 속도를 올린다는 포부다. 선전에 인접한 홍콩과 금융시장·인재·기관·제도의 밀접한 협력을 추진해 융합을 도모할 계획이다. 이러한 면에서 선강퉁 실시가 후강퉁보다 중·장기적으로 훨씬 위력적일 수 있다고 선전특구보(深圳特區報)는 분석했다.
홍콩은 선전과의 협력으로 세계 최대 역외 위안화 거점이자 아시아 자산관리 허브의 입지를 한층 공고히 할 수 있을 전망이다. 선전 증시가 상하이 증시보다 규모는 작지만 혁신의 활기가 충만하고 상장사 대다수가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선전의 경우 세계 일류 수준의 창업판(차스닥) 조성, 과학기술산업 혁신도시로의 도약을 이루는데 있어 홍콩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최근 공개된 ‘13차5개년 국가과학기술혁신규획’에서는 창업판 개혁을 심화해 혁신·성장형 기업 발전에 힘을 보태는 것을 선전의 핵심과제로 언급했다. 선강퉁 개통은 글로벌 투자자의 창업판 투자, 즉 해외자본의 유입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선전과 홍콩이 상호 보완하는 ‘금융 가족’으로 거듭난다면 충분히 글로벌 금융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영국의 금융회사 런던시티가 올 4월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 따르면 홍콩은 런던, 뉴욕, 싱가포르 다음의 4위에 올랐고 선전은 19위에 안착했다.
◇ 두 평 남짓 ‘쪽방’이 1억5000만원…중국 집값 폭등의 중심
“집은 볼 필요 없어요. 그냥 이 집으로 하죠”
지난달 말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가 게재한 ‘선전 부동산 구입 스토리’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2015년 하반기 시작된 집값 폭등, 빠듯하기만한 살림...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 위해 걷고 또 걸었던 한 선전 여성의 사연이다. 결국 그녀는 위치도, 가격도 마음에 안 드는 집을 두고 한숨섞인 말투로 말했다. “볼 필요 없어요, 그냥 살께요.”
최근 세계는 중국 부동산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경기둔화, 공급과잉에도 불구하고 1, 2선도시 집값이 거침없이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거품 붕괴 우려가 커진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활기는 중국 경제의 활기인 동시에 부동산 시장의 위기는 중국 경제의 위기가 될 수 있다. 그 불안한 ‘시한폭탄’의 가운데 또 선전이 있다.
최근 선전시의 6㎡규모 쪽방 아파트가 1억500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중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11채 가운데 4채가 이미 팔렸다는 소식이 더욱 놀라웠다. 당국이 해당 아파트 판매를 중단해 파장을 막았지만 이 사례가 선전시에 불고 있는 부동산 광풍을 고스란히 보여줬다고 할 만하다,
선전, 베이징 등 주요 도시가 앞다퉈 구매제한령을 내놓으며 진정에 나섰지만 중국 부동산 시장에 서린 광기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8월 중국 70대 주요도시 신규주택 가격은 전년 동기대비 9.2% 상승하며 7월의 7.9%보다 상승속도가 빨라졌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1.5%로 전월의 0.8%를 0.7%포인트 웃돌았다. 선전시 주택가격은 전달 대비 2.1%, 전년 동기대비 36.8% 급등했다.
가파른 상승폭을 보이고 있는 선전 부동산 시장은 향후 중국 전체 부동산 시장 추이를 이끌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선전이 중국 경제 회복의 시작이자 또 위기의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은 선전의 혁신·창업의 도시로의 위상을 위협한다는 점에서도 우려된다. 높은 부동산 가격, 임대료에 부담을 느낀 기업이 하나 둘 선전을 떠나고 있기 때문. 최근에는 화웨이가 선전에서 발을 뺀다는 소문이 나와 긴장감을 키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