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자 노동의 역습' 크레이그 램버트 지음 | 이현주 옮김 | 민음사 펴냄

'그림자 노동의 역습' [사진=민음사 제공]
현대인이 바쁜 것은 스팸 메일 지우기, 온라인 쇼핑몰에서 공인 인증하기, 자동차에 직접 주유하기 등 수없이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임금에 기초를 둔 상품경제아래에서 보수없이 행하는 비생산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 일컬었다.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 자동응답시스템(ARS)을 기다리고, 커피 전문점에서 다 마신 컵을 치우며, 가구를 조립하느라 낑낑대는 수고로움도 이에 속한다.
'하버드 매거진' 편집자로 20년 넘게 활약해 온 저자 크레이그 램버트는 일리치가 주창한 그림자 노동 개념에 착안해 오늘날 우리가 바쁘게 사는 이유와 양태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저자는 "정보 혁명과 자동화가 진전되고 있는 지금도 그림자 노동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고 단언한다. 사회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의 틈새에서 많은 일들이 개인과 소비자로 교묘하게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멀티 태스킹의 인질이 되어, 일에 대한 자율성을 누리는 대신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일정 주기마다 바꿔야 하는 디지털 정보(패스워드 등), 상품과 함께 제공되지 않는 사용 설명서 등 '셀프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여유 시간을 뺏는 세태를 꼬집는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림자 노동이 증가하는 이면에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려는 기업들의 노력이 있다고 밝힌 부분이다. 이 덕분에 고객들은 식당 샐러드바에서 직접 음식을 담아 오고, 공항에서는 키오스크(KIOSK, 무인 종합정보안내시스템)로 직접 탑승수속을 밟으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적절한 답변을 찾기 위해 홈페이지 '자주 찾는 질문'(FAQ)을 헤집는다.
원치 않게 할 일이 많아졌다고 툴툴거리기엔 하루하루의 일상이 아쉬울 터. 중요한 것은 그림자 노동을 이해하고, 우리의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일이 아닐까.
336쪽 | 1만6000원
◆ '그럴 때 있으시죠?'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펴냄

'그럴 때 있으시죠?' [사진=나무의마음 제공]
"강자를 조롱하는 것은 풍자이고 약자를 조롱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조선시대 탈춤을 추며 한 줌도 안 되는 지식과 힘을 가지고 거들먹거리던 양반들을 웃음으로 조용히 박살냈던 광대의 말입니다. 광대의 후예로서 참 와 닿는 말입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부당한 권위를 누리려고 하면 유머로써 그들을 나무라는 '광대 중의 광대' 김제동이 따뜻한 에세이를 들고 독자 곁을 파고들었다.
토크 콘서트 등을 통해 한 달 평균 5000명, 많게는 2만여명까지 만나는 김씨는 관객들에게 스스럼없이 마이크를 건넨다. 사회자와 청중이 따로 있지 않고 다 함께 어울려 이야기하다 보면 공감과 위로가 저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든다.
김씨는 이 책에서 가족사를 비롯한 어린 시절의 상처부터 이별의 고통,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路祭) 사회를 본 후 방송에서 줄줄이 하차해야 했던 경험, 민간인 불법 사찰 피해 고백까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툭 던진다. 그래서 그럴까. 이 책은 가끔 사는 게 뭔가 싶고, 괜히 억울하고, 나만 이런 건가 싶을 때 꺼내보는 서랍 속 비밀일기같은 느낌을 준다.
3년간 심리 상담과 공부를 한 김씨는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박사로부터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들리지 않는 울음을 들어주는 일, 주목받지 못하는 울음에 주목해주는 일, 누군가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것, 저는 그게 삶의 품격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상식'을 말하는 김씨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그는 "나는 종북이 아니라 '경북'이다"고 말한다. 이 책엔 그의 그런 패기와 유머가 부드럽게 스며들어 있다.
352쪽 | 1만5800원
◆ '내 뜻대로 산다' 황상호 지음 | 이상북스 펴냄

'내 뜻대로 산다' [사진=이상북스 제공]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지?" "과연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한 걸까?"
천정부지로 솟는 집값과 어딜 가든 겪게 되는 교통 체증, 거기에 학교·직장 등지에서의 살인적인 경쟁 문화까지… '서울살이'에 회의를 느껴본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음직하다.
저자 황상호는 예술가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충북 지역에 이주해 사는 14명의 예술가들을 3년간 만나러 다녔다. '기자' 명함을 떼고 생업이 아닌 다른 분야를 취재하러 다닌 그에게 예술가들은 지역 공동체 회복을 위해 그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자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대안을 선택한 사람들의 말 속에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의 온갖 핑계와 잡념을 털어낼만한 죽비가 한 자루씩 숨어 있었다"고 말하며 서울을 벗어난 예술가의 공통점 세 가지를 소개한다. 그것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것, 과소비하지 않고 간소하게 사는 것, 그리고 진짜 내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아 충분히 만끽하며 사는 것이다.
"모두가 가는 길을 따라가지 마라. 그 길에서 벗어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김종구 인형극단 '보물' 대표의 말은 창조적인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소리꾼, 시인, 화가, 만화가, 글방지기, 연극인, 명상가, 옹기장 등 예술가 14명의 인생을 대변한다.
좁디좁은 서울 안에서 밀려날까 두려워 과도한 경쟁, 물신주의 등에 흠뻑 젖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책은 꿈꾸고 계획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 또 무언가를 궁리하며 이루어가는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208쪽 |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