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랴오닝 정재계 쑥대밭, 무슨일이 있었나

2016-10-1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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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정계 재계 관계가 쑥대밭이 됐다" "랴오닝성에서 왠만큼 힘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 모두 불안에 떨며 복지부동하고 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사를 받게 될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국경절 연휴가 예전처럼 들썩이거나 흥겹지가 않더라" "많은 프로젝트들이 잠시 중단된 상태며, 시민들도 불안해하고 있다"
국경절 연휴(10월1일~7일)를 이용해 고향인 랴오닝성 선양(沈陽)시, 다롄(大連)시를 다녀온 베이징거주 중국인들이 전한 현재 랴오닝성의 분위기다. 랴오닝성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전인대 집단 뇌물스캔들

지난달 13일.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12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23차회의를 개최했다. 중국의 월간지 차이징(財經)에 따르면 긴급하게 개최된 이 회의의 안건은 단 하나, 랴오닝성의 뇌물선거사건 처리였다. 올해 초 중국공산당 중앙과 랴오닝성 당위원회는 전안조(專案組)를 설립해 랴오닝성 뇌물선거를 조사했으며, 조사는 지난 6월말에 종료됐다. 전안조의 활동은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고 진행됐다. 그리고 장더장 위원장이 주재한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부정선거를 이유로 45명의 전국인민대표의 당선무효를 선언했다. 45명은 모두 랴오닝성이 선출한 전국인민대표였다. 부정선거로 한꺼번에 특정지역 대표들의 자격을 무더기로 박탈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로써 전체 전국인민대표는 2894명으로 줄게 됐다.

전안조가 조사한 부정선거는 2011년 10월 랴오닝성 당위원회 상무위원 선거, 2013년 랴오닝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주임 선거, 2013년 랴오닝성 전국인대대표 선거 등 총 3건이었다. 현재까지 발표된 부정선거 결과는 2013년 전국인민대표선거 1건이다. 전인대가 자격을 정지시킨 45명에 대한 처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사법기관에 이송되거나 중앙기율위에서 행정처분을 내리는 등의 처분이 내려질 예정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사진=신화통신]


◆102명중 45명 당선무효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격인 인민대표는 향·진(鄕·鎭)급 인민대표, 현(縣)급 인민대표, 지(地)급 인민대표, 성(省)급인민대표, 전국인민대표로 구분된다. 향진급 인민대표는 직선이며, 현급이상은 간선이다. 현급 인민대표가 지급인민대표를 선출하고, 지급인민대표가 성급인민대표를 선출한다.

3년반 전인 2013년 1월27일 랴오닝성 인민대표 619명은 102명의 전국인민대표를 선출했다. 102명은 전국인민대표로 활동해왔으며, 이 중 45명이 이번에 당선무효처리를 당한 것이다. 45명은 랴오닝성의 내노라하는 기업인과 관료들이다.

◆랴오닝 대표 기업인 총망라

명단이 공개된 45명 중 대표적인 인사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훙윈(宏運)그룹 왕바오쥔(王寶軍) 회장(46세)은 군인 출신으로 2003년 1월 성 인민대표로 당선됐으며 2번 연임에 성공해 13년째 성 인민대표로 일해왔다. 훙윈그룹은 1992년 설립됐으며 부동산, 무역, 금융, 의료, 스포츠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2013년 매출액은 130억위안이며 종업원수는 1만8000명이다. 왕 회장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성화봉송주자였으며, 중국 축구 1부리그팀인 랴오닝훙윈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링하이(凌海)전력 장잔위(張占宇) 회장(62세) 역시 군인출신으로, 1982년 공무원으로 전직했다. 링하이시의 농업전기국 국장을 지냈으며, 지방국유기업인 링하이전력그룹 회장으로 일했다. 전력시스템 개혁을 주도한 그는 랴오닝성에서 유명한 인사다.

중싱(中興)상업 류즈쉬(劉芝旭) 회장(62세)은 선양시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가 설립한 국영기업 중싱상업을 이끌어왔다. 선양에서 대규모 쇼핑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1997년 선전(深圳)거래소에 상장됐다.

중이(中一)그룹의 리둥치(李東齊) 회장(56세)는 2013년 선거에서 400만위안의 뇌물을 뿌린 것으로 전해진다. 각종 회의에서 본인의 명함이 붙어진 아이패드를 선물로 돌리기도 했다. 중이그룹은 부동산개발, 항공기리스, 보험, 호텔 등을 영위하는 기업이다.

후루다오카이선멍(葫蘆島凱森蒙)그룹의 리위환(李玉環) 회장(55세, 여성)은 민영기업 대표다. 의류상을 하다가 대규모 패션사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뒀다.

양광(陽光)에너지의 탄원화(譚文華) 회장(60세)은 국유기업 기술자로 일하다가 창업한 인사다. 태양광전지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홍콩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다. 랴오닝성 진저우(錦州)와 칭하이(青海)성 시닝(西寧), 상하이에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탄 회장은 랴오닝공업대학 교수로도 활동하며 수많은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국유기업 다롄강(大連港)그룹 후이카이(惠凯)회장(52세)는 항구관련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다롄시 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을 거쳐 다롄강그룹 회장을 지냈다. 다롄이공대학 박사출신이다. 다롄항을 세계 20위권 이내로 진입시킨 주역이다. 이 밖에도 숱한 지역내 유명인사들이 낙마해 형사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중국 프로축구 1부리그의 선양훙윈팀. 구단주는 이번 전인대 뇌물스캔들을 일으킨 왕바오쥔 훙윈그룹 회장이다.[사진=신화통신]



◆지방인대 452명 뇌물수수 충격

45명은 뇌물공여자이며, 뇌물수여자는 당시 선거의 유권자인 랴오닝성 인민대표들이다. 전인대의 공표가 이뤄진지 6일 후인 9월 19일 랴오닝성 인민대표대회는 619명의 성 인민대표 중 452명의 직무정지를 결정했다. 무려 452명이 뇌물을 수뢰한 것이다. 랴오닝성 인민대표대회는 452명의 명단도 공개했다. 명단에는 대북사업을 해온 훙샹(鴻翔)그룹의 마샤오훙(馬曉紅) 회장도 포함돼 있다. 이들 역시 내노라하는 지역내 기업가와 관료들이다. 이 밖에 랴오닝성의 중간간부 1000여명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콩매체 SCMP에 따르면 랴오닝성에선 선거를 앞두고 상급 인민대표 후보자들이 하급 인민대표에게 돈 봉투나 차(茶) 등 고가품을 주는 게 관행이었으며, 이를 거절하면 불문율을 깨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모두가 매표 행위를 하기 때문에 후보자들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 2013년 선거 당시 선거 브로커들은 '낙선 시 100%' 환불을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낙선한 한 기업인은 돈을 돌려받지 못하기도 했다고 SCMP는 전했다.

◆표적 보복수사 해석도

이같은 매표행위는 랴오닝성 뿐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때문에 랴오닝성이 보복수사를 받았다는 해석이 있다.

SCMP는 중국 중앙당국이 3년 전 전인대 대표로 추천한 후보가 랴오닝성 인대에서 지지를 받지 못한 데 대한 보복성 조사을 벌이면서 랴오닝성 인대의 선거부정 사건이 드러났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랴오닝성 인대 대표 출신의 한 인사는 "2013년 초 중앙당국이 전인대 대표로 지정한 몇몇 후보가 랴오닝성 인대 대표들로부터 충분한 표를 얻는데 실패했다"며 전례 없는 정치적 실수가 당 지도자들의 격노를 사서 랴오닝성 부정선거에 대한 조사를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랴오닝성 인대 위원장을 지낸 왕민(王珉) 전 랴오닝성 당서기가 당시 중앙당국이 제공한 전인대 대표후보 리스트를 못본체 했다는 설이 제기된다. 왕민은 지난 3월 기율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이어 지난 8월 '쌍개'(雙開·당적과 공직 박탈) 처분을 받았다.
 

국경절 연휴기간 인파로 붐비는 선양 북역.[사진=신화통신]



◆랴오닝방 조사 칼끝 어디?

왕 전 서기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의 대표주자인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의 측근이다. 랴오닝성은 또 공청단 출신인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당서기를 지내며 기반을 닦았던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번 부정선거 적발이 내년 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의 권력재편을 앞두고 리 총리 지지세력을 손보기 위한 표적 사정이란 해석도 나온다.

또한 이번 부정선거 적발은 현직 당서기인 리시(李希)가 진두지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15년 당서기에 임명된 그는 시 주석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랴오닝성은 현재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중앙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받고 있다.

왕민 전 서기 이외에도 랴오닝 출신의 고위급들이 연이어 낙마했다. 지난 8월 말 랴오닝성 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인 왕웨이중(王唯衆, 71), 샤더런(夏德仁, 61) 랴오닝성 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부패혐의로 낙마했다. 랴오닝 인민대표회의(인대) 상무위원회 부주임 겸 공안청장을 지낸 리펑(李峰, 63)은 조직 조사를 받고 해임된 뒤 공안 부청장으로 강등됐다. 정위줘(鄭玉焯, 61) 인대 부주임도 8월 엄중한 기율위반 혐의로 현재 구금 조사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2008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랴오닝성장을 지낸 천정가오(陳政高·64) 국무원 도시농촌주택부 부장이 조만간 낙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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