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진영 기자 = "괜히 저래. 왜 저러는 거야 아까부터."
술이 좀 들어간 참이라 저 말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하진 않더라도 저것과 비슷한 말이었던 건 확실하다. 강지환은 소속사 관계에게 저런 말을 하며 필자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자주 보는 연예인들의 표정이 있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인데 굳이 카테고리 화를 하자면 난감함과 비슷하다. 연예인도 사람인지라 늘 갖춰진 태도로 일관할 순 없을 테지만, 사실 기자 앞에서 날것의 표정이나 말을 하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추측하건대 그 난감해 보이는 표정은 그럴 때 짓는 것일 것 같다. '저런 얘길 왜 하는 거야' 내지는 '솔직하게 말을 해 말아'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가운데 기자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호탕한 이들이 있는데 지금까지 세 번 만나며 본 강지환은 그런 사람이었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힘들었지만 촬영장 분위기가 워낙 좋았어요", "상에는 욕심이 없고", "뭘 정해놓고 연기하진 않는 것 같아요" 등등 정형화된, 사실 그래서 묻지 않고 혼자 상상해서 기사를 적어도 될 법한, 말들 사이에서 강지환이 보여주는 솔직하기 그지없는 리액션은 때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그는 '몬스터'에 캐릭터들이 워낙 많이 나와 주인공인 자신에 대한 관심이 분산된 것에 대해 서운해 하기도 하고 로맨스 부분이 아쉬웠다고도 하고 "작품상으로는 성유리와 맺어지는 게 맞지만 실은 지고지순한 조보아 캐릭터가 더 좋았다"고도 가감 없이 말했다.
이런 솔직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감동적이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그를 스쳐간 지난 작품들과 오버랩 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돈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은 한 남자 이차돈(돈의 화신), 고아로 자라며 밑바닥 인생을 살다 재벌 그룹의 장남이라는 새 삶을 얻은 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세상의 부조리에 맞섰던 김지혁(빅맨), 거대한 권력집단의 음모에 가족과 인생을 빼앗기고 철옹성 같은 특권층과 맞서며 복수를 이뤄낸 강기탄(몬스터)까지. 강지환이 최근 출연한 작품들은 하나같이 가진 것 없는 한 인간이 세상의 특권과 유리천장에 맞서 싸우며 무언가를 성취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리고 배우 강지환, 혹은 인간 강지환이 가진 당당하고 거리낌 없는 솔직한 태도가 이 같은 작품들을 만나 일으킨 시너지는 상당했다. 14%가 넘는 시청률로 종영한 '몬스터' 역시 시작 전에는 '50부작 복수극이 될까'라는 시선을 받았던 터다. 하지만 강지환은 작품 말미 늘 '될까?'라는 우려를 '또 됐다'로 바꿔놓곤 한다.
이날 "강지환이 아니라면 '몬스터'의 강기탄을 누가 맡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더라. 강지환이라 이렇게 잘 끌고 올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고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 말을 들은 선배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 기사로 쓰라"고 했다. 그래서 기사로 쓴다. '몬스터'는 강지환을 만났기에 훨씬 설득력을 높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간담회에서 강지환은 복수극에 연이어 출연한 것에 대해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복수극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슬픔, 악, 액션 등 여러 가지가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는 복수극만 하냐는 말을 별로 신경 안 썼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다음 작품에서는 이 부분을 좀 신경 쓰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작품을 하느냐를 선택하는 건 배우의 몫이겠지만 제 3자, 혹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런 평가를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그가 부조리한 사회를 향해 날리는 펀치는 너무나 통쾌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