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오진주 기자 = “이 빨간 도장이 서울시의 관인입니다”
‘새로운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정제택 회장은 압구정 재건축 지구단위계획 변경에 대해 서울시에서 회신 받은 서류를 강당 한 쪽 면을 덮은 큰 화면에 띄웠다.
이번 설명회의 핵심은 ‘신탁방식을 통해 사업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가’였다. 주민들은 답을 얻기 위해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된 약 두 시간 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설명회 전에는 정 회장과 그에게 신분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주민들 사이에 고성과 반말이 오가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7일 서울시는 압구정지구 재건축을 ‘정비계획’에서 ‘지구단위계획’으로 변경했다. 정 회장은 “이번 변경을 서울시의 공식 발표가 아닌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며 이를 확인을 하기 위해 민원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화면 속 문서를 가리키며 “서울시가 변경을 확인해줬고 기존 일정에 맞춰 사업이 진행되도록 하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이 지연된 사례도 소개했다. 조합원 5910가구, 신축 1만1000가구로 대규모 사업이었던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는 2003년 조합추진위가 설립됐지만 2009년에야 조합이 설립돼 2015년 사업시행에 들어갔다. 아직 관리처분인가도 못 받은 상태다.
반면 지난달 24일 신탁사 설명회를 진행했던 여의도지구는 이미 신탁방식 재건축에 돌입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한국자산신탁은 다음 달 여의도지구에 제안서를 보내고 올해 안에 시공사를 선정한다. 그는 “최소 2~3년 이상 사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업 기간이 단축되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로 인한 세금을 아낄 수 있다. 김 실장은 압구정지구에 환수제를 적용한 표를 공개했다. 4000가구 규모의 3지구의 재개발 이익이 약 5억원이면 총 약 8600억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2018년부터 시행되는 이 제도를 피하려면 내년 말까지 관리처분 인가를 신청해야 한다.
그럼에도 신탁방식에 대한 주민들의 의구심은 이어졌다. “신탁사가 수수료만 챙기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실장은 신탁사는 공적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8조에 공공기관이 재건축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했지만 자금이 부족했고, 자금력있는 신탁사가 참여하도록 작년 9월 1일 법 개정을 통해 정부가 길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주민의 권리를 빼앗긴다는 우려에 대해선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주민한테 위임하고 시공사도 주민이 선정한다”고 밝혔다. 신탁방식도 조합방식처럼 주민 4분의 3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앞으로 압구정지구가 신탁방식으로 재건축을 진행하면 추진위와 같은 성격인 정비사업위원회를 주민대표로 구성한다. 이들과 신탁사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면 신탁사는 주민들에게 사업제안서를 제출하고, 주민들은 신탁동의서를 제출한다. 이후 시공사를 선정하고 사업시행인가 단계로 넘어간다.
이번 설명회에서는 롯폰기힐스를 개발한 일본 모리빌딩의 임승희 부장이 압구정지구에 타운매니지먼트 방식의 개발을 추천하기도 했다. 타운매니지먼트는 개발 지역 전체를 활성화해 지역 가치를 높이는 방식을 말한다. 모리빌딩은 현재 서울시의 요청으로 타운매니지먼트에 대해 자문을 하고 있다.
다음 달 정 회장은 미국의 사례를 발표하는 설명회를 진행한다. 김 실장은 “아직 ‘신탁’을 ‘빼앗기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주민들이 많다”며 “앞으로 신탁에 대한 이해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