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동주민센터] 1인 가구 우울증, 대인기피증 심각 '무연(無緣)사회' 도래하나

2016-09-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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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기척 없는 사각지대 급증… 위기 가구 발굴부터 취업까지 지원

[서울 자치구의 복지플래너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 상담을 진행 중이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의 가구를 발굴해 적극 지원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아주경제 강승훈 기자 = 서울의 복지 패러다임이 혁신 중이다. 은행업무를 하듯 민원인이 담당 공무원을 찾아가는 번거로움은 이제 불필요하다.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동주민센터가 찾아가는 복지실현을 꾀한다. 누구나 동등하게 누리는 보편적 복지와 발굴주의로의 전환, 맞춤형 서비스 제공에 주목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위기의 가정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리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들의 실태를 짚어보고 해외 우수사례와 '시민이 행복한 도시'로 도약 중인 서울시 정책을 점검한다.

글 싣는 순서
2.지속가능 복지 '찾동'이 답
3.민관이 서로 머리를 맞댄다
4.해외 선진사례에서 배운다

1.인기척 없는 '무(無)연고사회'

"주머니에 가진 돈은 없는데다 몸도 아파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란 자괴감이 온종일 머릿속을 맴돌았고 수 차례 자살도 시도했죠. 깨어 있거나 심지어 잠을 잘 때 조차도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우울감이 높았습니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사는 이미진씨(66·가명)는 10년 전 이맘때를 돌아봤다. 과거 1남 2녀를 두고 전업주부로 생활하던 시절은 아름다운 추억일 뿐이다. 2001년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가장 역할이 일순간에 떠맡겨졌다. 잠시 슬퍼할 겨를도 없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평생 직장경험은 없었지만 손맛이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 인근의 식당에서 가끔 김치를 담궈주고 푼돈을 받아 살았다.

이씨는 "1년이나 10년 뒤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사치였다. 당장 숨막히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거주지불명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됐다"고 힘든 사연을 털어놨다. 앞서 자녀들이 모두 결혼해 출가한 터였지만, 첫째 아들은 이혼 후 거리에서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딸 역시 생활여건이 녹록치 않아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도움을 받기란 사실상 불가했다.

"주민등록 없이 산 세월이 8년입니다. 보증금 100만원에 한달 17만원의 월세에서 거주했는데 이마저도 8개월이 넘도록 제때 방값을 낼 수 없었어요. 이렇게 공식적인 신분 없이 무적자 또는 유령인간으로 지내면서 기초연금 혜택은 꿈도 못 꿨어요. 이 와중에 어깨통증은 어찌나 심하던지 너무 끔찍했지만 지역건강보험료가 체납된 탓에 병원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요즘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놀(혼자 놀기), 혼밥(혼자 밥먹기) 등 1인 가구 중심의 삶이 유행이다. 방송에서는 '나혼자 산다'란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 그야말로 '나홀로족'이 대세인 시기다. 항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넓게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실제 만남은 없다. 이런 1인 가구의 이면에는 우울증을 앓거나, 대인기피증까지 앓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조사가 있다.
 

[서울시 6080 1인 가구 여성의 희망하는 노후 및 가족돌봄 역할. 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전국에서 1인가구 수가 500만가구를 넘어섰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지난해 혼자 사는 가구는 520만3000가구로 2010년(421만8000가구)보다 100만가구 가량 늘어났다. 비율로는 25년만에 3배가 증가했다. 이 수치에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독거노인들이 늘어난 것도 주된 원인으로 담겼다. 간략히 '1인 미혼, 1인 여성, 1인 노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된 인구유형이 된 것이다.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겠지만 어떻게 보면 혼자서 살고, 혼자 죽는 '무연(無緣)사회'가 머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올해 6월 한달간 벌인 '1인 여성가구 생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4050 또는 6080세대 상당수가 배우자와의 이혼, 별거, 사별을 이유로 홀로 세상에 남겨졌다.

특히 60~80세 노년의 경우 혼자서 사는 불편함을 많이 호소했다. '몸이 아프거나 위급할 때 대처의 어려움', '외로움', '경제적 불안감' 등에서 높은 비율을 보였다. 10명 중 1명 이상은 평소 고민이 있을 땐 상담할 수 있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즐거움이나 괴로움도 혼자 삭히는 수밖에 없다.

반면 좋아하는 취미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경제활동에 나서 활기찬 노후를 보내고 싶은 욕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실상은 바람에 그치는 게 적지 않았다. 주민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나이가 많다', '혼자다'란 이유를 들어 차별이나 무시 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제 이미진씨는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2015년 8월 동주민센터의 복지플래너를 만나면서 기분 좋은 변화가 시작됐다. 주민등록은 복원됐고, 기초연금 및 생활수급 신청이 이뤄졌다. 그 사이 여기저기서 따뜻한 손길을 많이 전했다. 쌀은 물론이고 소소한 생필품도 보내왔다. 올 3월에는 모 어린이집에 취업이 결정되면서 정기적으로 소득이 발생해 자립할 수 있었다. 무섭고 두렵기만 했던 사회로의 첫 발을 당당히 내디뎠다.

엄의식 서울시 복지기획관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쏟아지던 업무를 담당할 인력을 두배 가량 확충해 공공복지를 정상화시킨 것"이라며 "민간기관과 주민을 서로 이어주는 등 다채로운 주체들이 참여해 지역의 복지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거쳐 성장한다"고 말했다.
 

[서울 자치구의 복지플래너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가고 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의 가구를 발굴해 적극 지원한다. 사진=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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