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자동차보험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자동차가 대중화되었을까? 운전자들이 보험도 없이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고속 주행을 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자동차보험은 일부 가입자의 난폭운전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자동차 판매를 늘리고 빠른 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등의 순기능이 더 많다.
요즘 창조경제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쉽게 얘기하면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하기 쉬운 제도적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책이다. 청년 일자리 대책 중에도 창업 활성화가 핵심이다. 그런데, 창업이란 하기도 쉽지만 망하기도 쉽다. 따라서 창업에 한번 실패했어도 다시 재기하기 쉬운 환경이냐가 중요하다. 즉, 실패 후 재기를 도와주는 ‘안전망’이 갖춰져 있느냐가 창조경제의 성패를 좌우한다. 한번 실패했더라도, 이젠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하면서 창업에 한 번 더 도전하도록 격려하는 시스템이 바로 창조경제 시스템이다. 그게 바로 창업 실패의 ‘안전망’이다. 그게 있다면 굳이 나라에서 권장하지 않더라도 청년들은 과감히 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중세의 길드조직에서는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에 걸려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조합원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만들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그물망의 일환이었다. 실업에 대비하는 고용보험, 아플 때를 대비하는 건강보험, 업무 중 상해를 대비하는 산재보험, 은퇴 이후를 대비하는 국민연금 역시 같은 취지에서 생겨난 사회적 안전망이다. 이처럼 실업, 질병, 재해, 노후를 대비하는 4대 사회보험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비로소 선진국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다. 다양한 위험에 대비하고 다시 노동력을 재충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업무에 몰입할 수 있고, 사회 전체적인 생산성과 효율성이 향상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OECD 평균 69%, 일본 69%, 독일 73%, 핀란드 80%, 덴마크 92%다. 선진국처럼 실업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고용의 유연성이 작동한다. 덴마크나 스웨덴처럼 실업 직전 급여의 90%정도를 2년 동안 지급하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도록 실효성 있는 직업훈련을 제공한다면 실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근로자들이 많아질 것이다. 실업기간에 여유롭게 새로운 일과 직장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실업급여의 소득 대체율을 올리고 지급기한을 늘리는 것은 고용의 안정성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결국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노사 각각 0.65%인 고용보험료율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놓고 노사정 3자가 모여 머리를 맞대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청년창업을 권장하면서, 정규직 근로자에게 ‘고용의 유연성’을 받아들이라고 하면서, 안전한 그물망 없이 위험한 공중곡예를 하라고 강요하는 방식이라면 곤란하다. 안전한 그물망을 믿고 맘껏 재주를 뽐내는 행복한 곡예사를 보고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