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대통령 후보에 6명이 난립했다. 민주공화당의 박정희(朴正熙) 외에 야당으로서는 민정당의 윤보선(尹潽善), 국민당의 허정(許政), 정민회(正民會)의 하영태(下榮泰), 자유민주당의 송요찬(宋堯讚), 추풍회의 오재영(吳在泳), 신흥당의 장이석(張履奭)이 그들이었다.
민정당은 ‘군정(軍政)으로 병든 나라 민정(民政)으로 바로잡자’는 구호를 내걸었고 선거공약에서도 군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 관여(政治 關與)의 엄금을 내세워 군벌(軍閥) 아닌 민간 정치인의 집권을 겨냥하고 9월 20일경부터 지방 유세에 나서고 있었다. 호남 지방 유세(遊說)로부터 시작하여 29일엔 대구에서 윤보선이 정견 발표를 했다. 윤보선은 가는 곳마다 성황을 이루어 기선을 제압하고 있었다.
목당(牧堂) 이활(李活)은 대구에 오면 으레 수복여관(壽福旅館)에 들었다. 3류의 지저분한 여관이었지만 일제 때 창씨개명(創氏改名)을 안 한다고 해서 일본 경찰에 의해 두 달 동안 이 여관에 연금(軟禁)당한 일이 있었고, 정기적인 사찰심문(査察審問)을 받을 때도 이 여관에서였다. 이런 인연으로 하여 그는 이 여관을 단골로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천 지구 사무장은 정진화(鄭晋和)라는 육사 8기 출신의 젊은이로 목당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47개 투표구(投票區)를 돌며 목당은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그와 또다시 맞선 민정당의 권중돈(權仲敦)은 백전노장(百戰老將)의 전사였다. 그는 군정의 부정부패를 들먹이면서 공격했고 청중들은 자극적인 언사가 나올 때마다 박수를 쳤다.
목당은 “선거란 당의 정책을 유권자에게 묻는 행사이지 상대방을 헐뜯고 공박하는 일은 일종의 선동에 불과하며 절대로 유권자들이 선동에 좌우돼서는 장래를 그르친다”고 역설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정치를 잘하여 잘살까 하는 마당에 선동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앞으로 제3 공화국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 유권자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다. 공화당의 대통령 중심제로 말하면 강력한 대통령 책임제로 책임정치(責任政治)를 하자는 것이다 그 책임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공화당(共和黨)은 앞으로 어떠한 참신한 정치를 책임지고 해볼가 하는 것이다. 앞으로 4년 시험을 해보고 틀렸다든지 하는 판단을 내릴 일이지 지금 공화당이 집권하면 전연 부패하게 되고 만다는 것은 악의의 선동이다. 공화당이 지향하는 정당은 절대로 그런 정당이 아니다. 민주공화당으로서는 자립경제(自立經濟)를 내세우고 있다. 5개년 계획도 마련되었다.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데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등 목당은 어디까지나 정공법(正攻法)으로 설득 일변도의 연설이었다.
목당의 장기(長技)는 좌담에 있었다. 사랑방에서 대청마루에서 유권자들과 둘러앉아 그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선거법(選擧法)을 설명하고 민주정치를 예를 들어가며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제1화
내가 영국에 있을 때 본 일입니다. 하루는 하숙집 할머니가 세금을 낸 영수증을 꺼내놓고 대조하고 있었습니다.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대(兩大) 정당(政黨)이 서로 교체해 가면서 정권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선거 투표를 앞두고 할머니는 어느 당에 표를 던질까 하는 것을, 보수당이 접권했을 때의 과세액(課稅額)과 노동당이 집권했을 때의 과세액을 비교해 보고 세금 부담이 적은 당에 표를 던질 작정으로 세금 영수증을 꺼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판단 아래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국회의원 선거는 정당간의 정책대결의 마당이 되어야 합니다. 공화당은 국회의원 후보가 되려 하는 사람은 소속 정당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고 못 박았고 임기중 당적(黨籍)을 떠날 땐 국회의원 자격도 잃는다고 규정했던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는 당과 당의 정책대결이어야 합니다.
◆제2화
한 사람 뽑는데 10여 명이 입후보하고, 더군다나 투표 방식은 막대기 밑에 붓 뚜껑 도장을 찍습니다. 장날 읍에 들어온 유권자가 10여 개의 입후보자의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점심 교환권을 받아 쓰고 온 중절모 리본에다가 꿰어놓고 다닙니다.
이것이 지난날의 선거풍경입니다. 일본이 처음 선거를 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는데 입후보자나 투표할 수 있는 유권자는 조세(租稅)를 기준으로 해서 일정금액 이상의 세금을 낸 사람에 한하는 제한선거(制限選擧)였으며 그 제한이 철폐되어 보통선거를 한 것은 30년 뒤인 1928년에 가서였습니다.
민주주의에다 의회주의 나라인 영국에선 1830년에 들어서서 보통선거 운동이 일어났습니다만 여자에게까지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922년에 가서였습니다. 100년 가까이를 두고 단계적으로 참정권(參政權)이 인정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보통선거를 해 왔습니다. 의회정치의 경험도 없으면서 일약 보통선거를 해 왔습니다. 국민들의 교육수준으로 보아 우리의 보통선거 실시는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한 정당에서 같은 선거구에 몇 명이 나타나 경합을 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이래서 공화당은 국회의원 후보가 되려면 소속정당의 추천을 받게시리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점심 교환권 같은 타락된 선거를 막기 위해 공영제(公營制)로 해서 법정 활동비(法定 活動費) 이상을 쓸 수 없도록 제한한 것입니다. 이대로만 실천된다면 이 나라에 민주주의는 뿌리박을 것입니다.
◆제3화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월슨의 노동당이 집권했을 때인데 교통부장관(交通部長官)의 아내가 남편이 갖고 있는 무임승차권으로 버스를 탄 것이 국회에서 정치문제로 악화했습니다. 이 문제로 그 장관뿐만 아니라 노동당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영국에선 새 정권이 들어서면 수상(手相)할 것 없이 전 각료의 봉급이 공표됩니다. 물론 각료 이동이 있을 때도 반드시 연봉이 명시되어 신문지상에 발표되지요. 국회의원도 마찬가집니다. 결코 많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국회의원 월급이 100만원 즘 될 것입니다. 좀 초라하지요. 상원의원의 경우는 아예 봉급이 없습니다. 다만 출석 수당이 있을 뿐이지요.
정치인의 경우 높은 보수를 받아서는 안 되고 스스로 내핍을 시범해야 된다는 생각이지요. 귀(貴)도 누리고 부(富)도 동시에 차지하자는 것은 독제체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그런 체제하에선 사회정의(社會正義)를 구현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국회의원은 금전 또는 이권과 별 인연이 없어야 합니다.
선거운동만 하더라도 비용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고, 그 제한은 절대로 지켜집니다. 만약 법정 비용을 초과한 것이 판명될 때 선거는 물론 무효가 되고, 후보자 등 관련자는 교도소에 가야 합니다. 법은 정치주의(政治主義)까 생명인 이 나라에선 엄격히 지켜집니다.
선거가 끝나면 입후보자와 선거사무장은 투표 35일 이내에 모든 선거 경비를 선거관리위원장에게 신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문에 공고도 합니다. 후보자의 사사로운 경비를 제외한 선거운동의 수당, 인쇄비, 광고선전비, 벽보대, 집회경비 등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야 하고 공증되어야 합니다. 반대파 사람들이 이 보고서를 철저히 검토할 수 있으며 만약 법정 선거비를 초과한 것으로 판명되면 소송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선거무효가 되는 사항으로는, 첫째, 뇌물·향응·부당한 영향력·대리투표·부정행위 및 선거비용의 허위신고 등이고 둘째, 불법적인 금전지급과 불법채용, 수송수단 또는 장소의 불법임대와 선거운동의 부적당한 집행, 각종 투표 범칙행위, 선거경비(選擧經費)의 위반 등입니다. 여기 위반되면 선거 무효가 될 뿐 아니라 부패와 불법행위에 저촉되면 형사처벌을 받는 것입니다.
공화당은 지난날의 타락선거를 지양하기 위해 이번에 선거경비법(選擧經費法)을 도입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조항이 어느 나라 선거법이고 간에 없지 않겠습니다만, 문제는 이러한 법률을 충실히 준수하는 법치국가(法治國家)냐 하는 데 따라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이번에 공화당은 민주 질서를 뿌리박아 금권타락(金權墮落)을 막기로 한 것입니다.
유권자 여러분도 이번 선거가 지난날의 선거와는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셔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