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 왕자인(王佳音) 기자 = ‘정보의 홍수’ 시대에 조용히 앉아 책 한 권을 읽으며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이미 하나의 ‘사치’가 된 듯하다.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제22회 서울국제도서전’이 6월 15일부터 19일 간 개최되었다. 이번 도서전은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하고 19개 국가에서 온 출판사와 콘텐츠산업기관 등 346곳의 관련 단체가 참가했다. 도서전 개막식 당일은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관람객들이 일찍부터 현장에 도착해 전시장 오픈을 기다렸다.
책과 사람이 있는 ‘문화의 장’
6월 15일 오전, 칠순을 넘긴 노신사의 풍부한 감정이 어린 ‘시 낭송’을 시작으로 제22회 서울국제도서전이 정식 개막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종덕 한국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고영수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비롯해 서울주재 외국 대사관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했다.
주최측은 이번 도서전의 취지가 각국 출판사와 한국 출판사 간 저작권 교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또 독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책을 통해 즐거움을 찾고, 좋아하는 작가, 시인과 독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출판 관련 제휴를 맺기 위해 분주한 출판업체들의 모습과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따라 책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아이들과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책 예술공방’에서는 어린이들이 책의 제작 과정을 살펴보며 직접 책을 만들고 있었다. 여기에는 책을 낭독하거나 구연할 수 있는 체험학습 시설도 있어 자신이 선호하는 책을 골라 큰 소리로 읽어보는 등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 서울 시민은 매년 도서전을 방문한다면서 “이번 도서전은 관람객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부스가 많은 것 같다. 평소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전 관람을 가면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는 다양한 책을 보면서 체험도 할 수 있어 좋다. 책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도서전에는 상호 만남의 장이 여러 차례 마련됐다. 인문, 디자인, 문학, 예술 등 다방면을 주제로 한 ‘2016 문학살롱’, ‘예술가의 서재’, ‘인문학, 상상만개를 펴다’ 등을 통해 독자와 관람객이 서로 만나 교류를 가졌다.
‘2016 문학살롱’에는 이문열, 윤대녕, 정유정 등 작가를 초청하여 각자의 작품에 대한 분석과 해설 및 독자와의 문답 형식을 통해 작품에 대해 독자가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또 소설 『채식주의자』를 통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공동 수상한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와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의 저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도 독자와의 만남에 초청되었다.
‘인문학, 상상만개를 펴다’에서는 철학, 역사, 창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초빙된 작가와 교수들이 독자들이 인문학 분야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강연을 펼쳤다. 역사학자 신병주와 작가 명로진은 학문을 넘나들며 인문학적 지식을 알기 쉬운 말로 풀이했다.
‘예술가의 서재’에서는 광고업계 종사자, 아동문학가, 화가 등 각 분야에서 책을 출판한 적이 있는 저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창작 소스를 공유하고 창작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와 감상을 나눴다.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창작 외적인 면의 정신세계를 선보이기도 했다.
‘북멘토에게 묻다’에서는 앞날에 대해 막막함을 느끼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각 분야의 저자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행사에는 만화가 앙꼬, 여행작가 유승혜 씨 등이 참석했다.
독자에게 이번 도서전은 책을 둘러보고 구매하는 거래의 장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히고 지식을 쌓는 기회이자 세계 각지의 문화예술 지식의 보고를 체험할 수 있는 열린 마당이었다.
도서전에서 만난 또 다른 관람객 김윤자 씨는 오래 전 서울국제도서전을 관람한 적이 있다며 “이번 도서전은 지난 번에 비해 한층 콘텐츠가 풍부해진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 씨가 가장 관심을 두는 분야는 입체책 제작이다. 폐기물의 특성과 재질을 이용해 아이디어를 발휘하여 각종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들어간 입체 만화책을 제작하는 것이다.
책을 통한 중-한 교류
중-한 FTA가 체결됨에 따라 양국의 협력 분야와 무역 왕래가 점점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문화, 출판, 영상 등에서도 협력이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장시(江西)성 난창(南昌)시에서 열린 ‘2016 중한 도서저작권거래회’에서는 양국에서 온 60여 곳의 출판사가 참가하여 2800여 종의 도서와 간행물, 전자출판물 등을 전시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중국국제출판그룹, 중국지린(吉林)출판그룹, 중국도서수출입(그룹)총공사 등도 참여해 천여 종의 책을 전시했다. 현대 중국, 중국 문학, 중국어 교육, 아동도서 등 분야도 다양했다.
오랫동안 한중 도서저작권 거래업에 종사해 온 첸타이양(千太陽)문화유한회사의 담당자는 “최근 책의 저작권을 들여오고 수출하는 업체들이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렇지만 전자책이 확산되면서 저작권 콘텐츠 거래는 모바일 전자책 시장을 위주로 움직이고 있다. 몇년 전 중국에서는 한국의 요리, 미용, 헬스 등과 관련된 서적이 잘 팔렸다. 중국 작가 위화(余華)의 작품 역시 한국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종이 매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졌기 때문에 저작권 거래량은 상대적으로 줄었지만 그 질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정책 방향이나 경제 발전을 알고자 하는 중국인들이 많아지고 있고, 차이나 드림과 중국 경제 분석 등과 같이 전문적인 책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부스에는 저작권 협력을 위해 찾아온 한국인들로 붐볐다. 독립 작가도 있고 외국어 교육전문 출판사도 있었다. 종이서적을 수출입하면서 동영상이나 CD 등 학습 자료를 곁들이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담을 하러온 한국 독자들의 대다수는 중국어 학습이나 당시(唐詩), 최근 인기를 끄는 중국 현대소설에 관심이 있었다. 도서전을 찾은 한 남성 관람객은 “여러 해 동안 중국어를 독학하고 있지만 한국에 중국어 원서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며 “이번에 도서전을 찾은 이유도 중국어 원서를 찾기 위해서다”라고 털어놓았다. 중국 고대 시인 가운데 두보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부스에 전시된 책 중에서 <두보 시집>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워했다.
중국어 학습에 관심을 갖는 한국인들의 연령층도 다양했다. 젊은층은 대부분 현대 중국어와 중국 현대문학에 흥미를 나타냈고, 중년층은 고대 중국어에 얽힌 에피소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편, 도서전 기간 중국국제출판그룹은 서울 중국문화원에서 서예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예신(葉欣) 한국서예예술원 원장과 이기영 한국미술협회 초빙작가를 초빙해 중국 서예체험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유사성 덕분에 한국 일반인들에게 중국의 서예는 상당히 친숙하다. 이 때문인지 행사 참여도가 굉장히 높았다. 예 원장은 중국 서예의 전통과 기원, 이름난 서예가와 대표적인 글씨체 몇 개를 소개한 뒤 시범을 보이며 서예를 쓰는 요령을 설명했다. 행사에 참가한 한국 독자들은 중국 서예에 많은 호기심을 보였다. 그들은 초빙강사들의 1:1 지도 아래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작품을 가져갔다.
새로운 출판의 미래
제22회 서울국제도서전과 같은 기간 열린 ‘제3회 디지털북페어코리아’의 디지털 전시관에는 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개발이 이뤄지고 있었다. 책이 이제 단순한 읽는 대상을 넘어 함께 나누고 체험하며 듣고 보는 자료로 재탄생한 것이다.
관람객 이지혜 씨는 해외유학 경험이 있다. 이 씨는 “유학하던 시절 한국 책을 읽고 싶었지만 당시 수입되는 한국 원서가 무척 귀했다”며 “귀국할 때 가지고 올 것까지 생각하면 종이책은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그 때부터 전자책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귀국한 뒤에는 전자기기를 통해 영어나 중국어 원서를 편리하게 구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명자 대한도서문화예술협회 대표는 이번 도서전에 대해 “도서전의 주요 목적은 해외 도서를 국내에 들여오고 해외 출판사도 한국에 진출해 좋은 책을 찾고 이를 번역해 다시 해외로 수출하게 하는 것”이라며 “이번 도서전은 독자들과 전시된 도서들이 서로 가까이서 만나고 출판문화산업의 발전을 진흥하기 위한 장”이라고도 말했다. 또 서울국제도서전은 독자와 출판사의 동기와 의욕을 극대화해 도서 문화의 발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대표는 현재의 독서 현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밝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책에 흥미를 갖고 독서를 하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하며, 이런 습관이 성장 과정에서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매일 학원에 다니느라 독서 할 시간이 너무 없어요. 부모님들이 생각을 바꿔 독서가 아이들의 삶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저자와 출판사에 안정적인 창작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매년 수많은 책이 출판되지만 책이 팔리지 않을 경우 저자와 출판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좋은 작품이 탄생하기 힘들다. 또 강제적인 독서 권장이 반드시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독서 마라톤’ 같은 이벤트를 통해 독서율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독서 습관을 기르지 못하면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독서 마라톤 때문에 점점 독서에 흥미를 잃었다는 어린이들도 많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5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독서율은 74.4%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종이책과 전자책, 모바일 등 전자기기를 이용한 독서도 포함된다. 살면서 아직까지 한 번도 책을 구입해 보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의 독서율을 어떻게 높일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신 대표는 “지역 도서관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 단위의 독서 행사를 열고 정부도 국제 도서전을 적극 지원하며 좋은 출판소스를 들여오거나 내보내는 방식을 통해 교류의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영수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이번 도서전에 대해 “지난 번 도서전에 비해 참가 출판사 수는 줄어들었지만 이번에 진행되는 행사는 122개 업체, 참가 귀빈 수도 92명으로 역대 최다”라며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한 관람객 수도 작년에 비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대해서는 “국민과 독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정부도 출판 업계를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잠재력이 큰 출판사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 출판계는 기획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갖추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자금이 달린다. 영상문화콘텐츠에는 몇천억원을 투자하지만 출판계에 대한 지원은 극히 적다. 우리 출판계에도 삼성 같은 기업을 만들고 원양어선 같은 팀을 꾸려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현재 출판사들의 현황에 대해서도 전했다. 독서 인구는 매년 줄어들고 경기 침체와 도서 정가제 시행 등으로 인해 영세 출판사들은 성장은 커녕 생존조차 어려울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 도서전에 참가한 출판사 수는 361곳이었지만 올해는 234곳에 불과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바쁜 일상에 전자 정보의 발달로 현대인들이 독서를 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19일 폐막 때까지 무려 1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이번 도서전을 방문했다.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도서전 입구에는 훈민정음 글자로 가득 찬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도서전을 방문하는 독자들은 이 기념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번 도서전이 독자들에게 단순한 참가 기억을 넘어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 독서의 즐거움을 되찾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 본 기사와 사진은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