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천개의 등불이 빛나는 ‘둥관 천각등’

2016-07-0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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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치가 제작한 높이 5m, 폭 4m의 현존하는 최대 크기의 천각등[사진=인민화보 예하오원(葉浩文) 기자]


인민화보  리후이펑(李慧鵬) 기자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의 유명한 전통 수공예품인 ‘천각등(千角燈)’의 원형은 송나라 ‘팔각궁등(八角宮燈)’이다. 천 개의 각(角)에 천개의 등(燈)이 달려있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붙여졌다. 천각등의 몸체는 다양한 입체 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화, 전지(剪紙), 자수 등 민간 수공예가 집대성된 공예품이다. 유구한 역사와 거대한 크기, 정교한 공예로 ‘천고(千古)의 등’이라고 불린다. 2006년 1차 중국 국가급 무형문화재에 등재됐다.

천각등의 이름은 둥관 현지 방언에서 유래됐다. 둥관 방언에서 ‘각(角)’과 ‘개(個)’의 발음이 같고 ‘등(燈)’과 ‘정(丁)’이 발음이 같다. 과거 천각등은 둥관 조씨 가문의 독점물이었다. 조씨 가문 사당에 보관했다가 조씨 가문에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만 등을 가져다 걸었다. ‘사람이 늘었다는 것(添人)’을 ‘등이 늘었다(添個燈)’라고 표현했다. ‘첨개(添個)’와 ‘첨각(添角)’의 발음이 비슷하다. 천각등이란 명칭에는 ‘천 개의 각을 가진 천 개의 등을 취했으니 가문이 번창할 것이다. 천 개의 꽃은 본디 같은 가지에서 나며 천 개의 각은 본디 같은 뿌리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10년에 한개 제작되는 희소품

현지 <조씨족보(趙氏族譜)>에 따르면 송 태조 조광윤(趙匡胤, AD 927-976)의 여동생 조미용(趙美容)이 둥관으로 피난해 정착했다. 그녀는 기억 속 황궁 등의 모양을 더듬어 둥관 관청(莞城)진(현재의 관청가도(莞城街道)) 예술가들에게 ‘천각등’을 만들도록 했다. 그녀는 여기에다 자신이 직접 수놓은 ‘이십사효도(二十四孝圖)’의 등 24개를 달아 ‘황고대(皇姑帶)’라고 명명했다.

천각등은 크기가 크고 제작이 복잡하며 정교한 기술을 요한다. 각종 요인의 제약 때문에 천각등은 생산량이 매우 적다. 과거에는 10년에 겨우 한 개 제작됐고 제작된 등은 정월에 관청 조씨 사당 내에 걸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10년 뒤 이 등이 낡으면 다시 제작했다. 등에는 반드시 천 개의 각이 있고 매 각마다 등이 하나씩 걸려있어야 한다. 등은 등정(燈頂), 등주(燈柱), 등체(燈體), 등대(燈帶), 등잔(燈盞)의 5부분으로 나뉜다. 등정의 8각에는 날아오르는 형상의 입체 채색 용 8마리가 있고 각 각(角)에는 등 3개를 늘어뜨린다. 등대는 위에서 아래로 8칸으로 나뉘며 각 칸에는 산수, 화훼, 인물 등 도안이 양면으로 그려져 있다. 해마다 음력설인 춘제(春節)가 되면 천각등을 보면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비는 게 관청진의 풍습이었다.
 

천각등은 서화, 전지, 자수 등 민간 수공예가 집대성 된 우수한 민간 공예품이다.[사진=인민화보 예하오원(葉浩文) 기자]


자료에 따르면 1950년대 관청진의 현지 예술가들이 천각등 제작에 참여했고 이를 둥관현 물자교류회, 광둥(廣州)시 문화공원, 둥관현 전시관에 전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천각등은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2004년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관청가도 사무처는 소중한 민간공예인 천각등을 재현하기 위해 관청공예공장에서 일했던 87세의 장포(張佛)와 84세의 인취안(尹全), 두명의 노 예술가를 초빙해 천각등을 제작도록 했다. 이 두 사람이 각자의 집안을 이끌고 8개월 동안 노력을 기울인 끝에 높이 4.5m, 폭 3.5m 크기의 천각등을 만들어냈다. 2005년 이 천각등이 랴오닝(遼寧)성 선양(沈陽)에 전시돼 중국 민간공예 ‘산화상(山花獎)’ 금상 1등과 ‘중화제일등(中華第一燈)’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받았다.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장수치

현존하는 최대 천각등은 현재 둥관시 민간예술센터 무형문화재 전시실에 있다. 이 천각등은 노 예술가인 장포의 아들 장수치(張樹祺)가 만들었다. 이 천각등은 제작에 1년 넘는 시간이 걸려 올 3월에야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등은 높이 5m, 폭 4m이며 제작에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장수치는 자신의 아버지 장포가 천각등 국가급 계승자로 2004년 천각등 제작을 요청받았을 때 이미 연로했지만 경험은 풍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천각등 제작 기법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천각등의 전통 계승자인 장수치[사진=인민화보 예하오원(葉浩文) 기자]


올해 70세인 장수치는 천각등은 설계도도 없고 샘플도 전해지지 않으며 스승이 구전으로 제자에게 전수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2009년 아버지 장포가 세상을 떠나자 천각등 계승이 더 어려워졌고 이 전통공예는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장수치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겐 아들이 두명 있다. 원래는 아들들에게 전수하려고 했다. 그들은 기본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천각등에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천각등 제작기술 전승 문제가 시급해졌다. 현재 천각등 제작과 주문은 주로 여동생 3명과 매제 1명의 도움으로 이뤄지고 있다. 큰 여동생이 주로 맡아서 하며 다른 이들은 시간이 났을 때 와서 도와주는 정도다. 두 아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장수치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2016년 5월 14일 둥관 천각등 전습소가 개설된 것이다. 전수자인 장수치가 직접 수업을 하고 30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는다. 천각등 제작 공예는 매우 복잡하고 전승의 길은 멀지만 장수치가 걱정했던 계승 문제가 마침내 탐색의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이번에 개설된 천각등 전습소의 학생 수는 30명이다. 응시자 120명 중에서 70명을 선발한 후 이론과 실기 시험, 면접을 거쳐 30명이 양성반 1기 학생이 됐다. 양성반은 매주 토요일 오후에 수업을 한다. 수업은 올 연말에 끝난다. 1기 양성반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시기가 무르익으면 천각등 전습소는 ‘우수한 사람 중에 더 우수한 사람’을 선발해 고급반을 개설할 계획이다. 이 고급반 학생 중에서 가장 적합한 천각등 계승자가 나올 것이다.

* 본 기사와 사진은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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