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경제 부총리는 지난 2월 19일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도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서 정치와 경제문제는 별개로 볼 수 있기에 무역보복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단언했는데. 우리나라 정·관·언·학계 주류의 시각도 “사드를 배치해도 중국이 무역 보복 안할 것”이라는 쪽으로 경도돼 있다.
사드배치와 관련한 그간의 위정자들의 업무행태가 객관적 인식과 구체적 대안에 주력하는 실사구시 태세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 혹시 왜란과 호란의 ‘부지피 부지기(不知彼不知己) 백전백패’ 의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무척 심란하다.
인식의 오류는 자기나라의 문화나 제도, 학습과정에서 배양된 의식구조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습성에서 출발한다. 이에 필자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일곱 가지 중요한 인식의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유일호 경제부총리 단언대로 중국은 정치와 경제가 구분되는 국가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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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공권력 우위체제 중국은 WTO가입과 상관없이 철저한 정경일체 국가다. 중국의 모든 기업들은 당과 정부의 방침을 일사불란하게 실행하도록 시스템화 되어있다. 일례로 중국은 2009년부터 국유자본이 1주라도 들어간 민영회사까지도 국유기업으로 간주하는 등, 기업에 대한 정부의 인사권과 경영권 개입을 합법화한 '기업국유자산법'을 시행하고 있다.
둘째, 흔히 알려져 있듯 대중 수출비중은 26%인가? 아니다!
31.8%(중국본토 26%+홍콩 5.8%)이다. 다이어트하려는 사람이 과체중이 부끄럽다고 신체의 일부를 빼고 몸무게를 달면 안 되듯 1997년 7월 이후 이미 중국의 일부가 된 홍콩을 빼고 산정하면 어쩌겠다는 건가? 수출비중 26%도 이미 과비중이지만 문제의 정확한 파악과 해결을 위해서는 각종 수치는 실제와 한 치의 오차가 없어야 한다.
2015년 우리나라의 국가별 수출비중은 1위 중국 26%, 2위 미국 13.3%, 3위 홍콩 5.8%, 4위 베트남 5.3%, 5위 일본 4.9%이다.
흔히들 홍콩이 한국의 3대 수출 상대국이라고 하지만 홍콩은 분명 국가가 아니다. 홍콩은 우리나라 제주 특별행정자치도보다 작은 중국의 특별행정구에 지나지 않는다. 홍콩은 독립된 관세영역(Customs Territory)의 자격으로서 ‘WTO회원’ 일 뿐이다. 우리가 왜 1997년 홍콩의 중국반환을 아쉬워하여 홍콩을 여전히 중국과 별개로 표시하는 영국과 일본의 일부 언론매체들의 보도행태를 따라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를 견인해 온 것은 수출에서 시작해서 수출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1.8%의 대중 수출 비중은 대미 수출과 대일 수출 비중의 합계(미국 13.3%, 일본 4.9%)의 1.8배나 큰 비중이다. 대중 수출비중이 낮으면 중국이 보복하더라도 의연하게 버틸 수 있지만 그게 아니잖은가. 이제 와서 대중 수출의존도를 줄이고 수출선의 다변화를 꾀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셋째, 중국도 잃을 것이 많기 때문에 보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다!
중국의 수출총액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불과하다. 거래처를 대만이나 아세안 지역으로 돌려 버리면 그만이다. 비단 무역뿐만이 아니다. 관광·한류·금융·교육 등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중국이 쓸 수 있는 보복카드는 무궁무진하다.
넷째, 사드배치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는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무시해도 좋은 신문인가? 아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이자 국제뉴스 전문 일간지 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과 중앙정부의 대외관련정책의 풍향계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즐겨 보는 일간지로도 알려진 환구시보는 가독성과 대중성이 높아 일평균 200만 부가 넘고 중국내 신문 발행부수 3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이저급 신문이다.
이러한 「환구시보」가 지난 8일 사드배치와 관련된 기업의 상품을 중국 시장에 진입할 수 없도록 하거나 사드 배치를 주장한 한국 정치인의 중국 입국을 막자는 등의 5개의 대응방안을 내놓았다. 지난 9일자 신문은 한 술 더 떴다. 환구시보는 한국기업 및 서비스 기구를 제재하는 것에 대해 중국 누리꾼 전체의 90%가 찬성하는 결과의 설문조사를 내놓았다. 이러한 '환구시보'의 초강경 보도수위를 감안하면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발 후폭풍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다섯째, 사드배치 문제는 중국선박 불법조업 문제나 과거의 마늘파동과 같은 레벨인가? 아니다!
엄밀히 말해 중국측 입장에서 불법조업 문제는 설사 우리해군이 중국측 불법조업어선 한 두 척을 격침시키더라도 자국민 보호에 대한 '립서비스성' 외교부 대변인 항의 성명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는 변두리 문제다.
그러나 사드배치문제는 차원 자체가 다르다. 그들은 자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시진핑 시대의 자유무역구, ‘일대일로(一帶一路)'로 구체화되고 되고 있는 '중국몽(Chinese Dream)'은 당 나라의 부국과 번영, 송 나라의 문화와 문명, 원 나라의 강병과 팽창을 하나로 통합한 즉, ’세계의 중국화’ 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지금 1969년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아시아는 아시아인 손으로’를 외치며 실은 아시아를 일본 손에 맡겨놓고 떠난 '제2의 닉슨 독트린'을 기다리고 있다.
즉, 미국이 어느날 '역불종심(力不從心)', 즉 힘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아시아는 아시아 손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 대신 중국 손에 맡겨놓고 미 대륙으로 퇴각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같아 보인다. 상황이 이런데도 중국이 일본의 군국주의 재무장을 도와주고 ‘동아시아의 나토(NATO)’ 결성의 단초가 된다고 판단하는 사드배치를 아무런 일도 없었듯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겠다' 라는 말처럼 불의에는 눈 감아도 불이익에는 눈을 감은 적이 없는 반만년 중국 역사다. '10년 내에만 복수하면 사나이라고 할 수 있다'는 중국 속담처럼 유사 이래 중국은 다종다양한 보복조치를 감행해왔다.
멀리 갈 것 까지 없다. 21세기 중국도 일본과의 댜오위다오 분쟁에 희토류 대일 수출 금지조치로 보복했다.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에 노벨평화상을 주었다고 해서 노르웨이의 주요수출 품목의 하나인 연어의 수입을 규제했다. 어쩌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 문제에도 이처럼 과민한 반응으로 일관되어온 중국의 스팩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핵심이익을 침범했다는 사드배치를 마늘파동 정도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아 큰 탈이다.
여섯째, 시진핑 시대 중국의 제1주적은 미국인가? 아니다!
'G2 시대' 중국과 미국간 관계는 겉으로는 대립 관계지만 속으로는 동반자 관계다. 미국은 중국 본토를 침략한 적이 없는 유일한 열강이다. 중국도 미국에 역사적 원한이나 피해의식이 없다. 지난 10년간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미국에 대한 중국인의 호감도 순위 역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식민사관이나 친일잔재 청산 문제에서 자유로운 중국의 반일 감정은 한국의 그것에 비해 폭과 깊이, 차원 자체가 다르다. 중국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서구열강의 침략은 용서할 수 있지만 섬나라 일본의 만행은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의 전략적 핵심가치는 일본의 군국주의 재무장을 막아주는 ‘방파제’이다. 시 주석은 지난 3년간 박근혜 정부의 한국을 중국의 항일동맹전선에 동참시키는 꿈을 품었었다. 그러한 꿈에서 그를 깨운 것은 작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협상타결이었다. 믿었던 한국이 돌연 중국의 주적인 일본을 은근슬쩍 끼워 넣은 ‘한·미·일 동맹’을 외치며 중국의 심장을 노리는 ‘비수’로 변해버린 것 같은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이것이 올 1월 6일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시 주석이 박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진짜 이유다.
한마디로 중국은 “한미동맹은 참아도 ‘한미일동맹’은 못 참는다.” 따라서 사드배치를 강행할 경우 중국은 전방위·전천후·고강도의 보복조치를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된다.
끝으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식으로, 안보와 경제를 각각 미국과 중국에 역할 분담시켜 놓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아니다!
안보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따로 분리할 수 없다. 이 둘은 모두 국가의 존망과 국민의 생사가 걸린 양대 핵심 문제이다. 또한 한국에게 미·중 양국은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택해야 하는 대체제가 아니라 함께 할 때 더 큰 실리를 얻을 수 있는 보완재와 같은 소중한 존재다. ‘친미반중이냐, 반미친중이냐’ 하는 식으로 택일에 집착하기보다는 ‘용미용중(用美用中)’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