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8·7회의, 구톈회의, 쭌이회의, 시바이포회의, 11기3중전회. 오는 7월1일 중국공산당 창당 95주년을 맞아 인민일보가 28일 역대 5대 공산당회의를 꼽아 소개했다.
인민일보가 첫번재로 꼽은 회의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1927년8월7일 후베이(湖北)성 한커우(漢口)에서 개최한 긴급회의(8·7회의)다. 8·7회의는 실패를 거듭했던 천두슈(陳獨秀) 주도의 온건한 혁명활동을 우경기회주의의 오류로 비판했으며, 토지혁명과 무장봉기를 공산혁명의 방침으로 확정했다. 이 회의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강조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발언은 명언으로 남게 된다.
두번째 회의는 구톈(古田)회의다. 1929년12월28일과 29일 이틀간 푸젠(福建)성 상항(上杭)현 구톈에서 열린 홍4군9차대표대회를 칭한다. 구톈회의는 홍군의 성격을 '혁명이라는 정치임무를 집행하는 무장집단'으로 규정했으며 때문에 반드시 당의 지도에 복종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또한 홍군의 임무는 전쟁, 물자조달, 군중공작 등 3가지가 일치해야 한다고 정했다. 이는 홍4군 내부의 지침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중공 전체의 방침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네번째 회의는 1949년 3월5일에서 13일까지 허베이(河北)성 핑산(平山)현 시바이포(西柏坡)에서 진행됐던 7기2중전회다. 당시 베이징 입성을 앞두고 마오쩌둥은 ▲생일잔치 하지 말라 ▲선물을 보내지 말라 ▲건배를 최소화하라 ▲손뼉을 많이 치지 말라 ▲사람 이름을 따 지명을 짓지 말라 ▲중국인 동지를 마르크스 레닌의 반열에 올려놓지 말라는 6가지 당원원칙을 제시했다. 내전승리가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당원들의 기강을 바로잡은 것.
다섯번째 회의로는 11기3중전회가 꼽혔다. 1978년 12월18일에서 22일까지 베이징에서 진행됐으며 덩샤오핑(鄧小平)은 마오쩌둥 회귀노선을 '실사구시'를 내세워 제압했다. 또한 당의 중점목표를 '계급투쟁'에서 '사회주의현대화'로 전환시켰다. 이 회의를 통해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하는 제2기 지도자그룹이 형성됐으며, 개혁개방의 물꼬가 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