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은 지난 27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2016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방문 경기에서 불펜을 달궜다. 두 번이나 점퍼를 벗었다가 다시 입었다.
팀이 9-6으로 앞선 9회 세이브 상황이 되자 마무리 투수로 등판을 하기 위해서였다. 오승환은 점퍼를 벗고 몸을 풀었다. 하지만 팀이 9회초 2점을 더 뽑아 11-6으로 달아나면서 세이브 상황이 사라졌다. 오승환은 다시 점퍼를 입었다.
대신 불펜 투수 맷 보우먼이 마운드에 올랐다. 보우먼이 9회말 1사 후 볼넷을 내주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오승환이 다시 점퍼를 벗고 불펜에서 몸을 풀었다. 보우먼이 후속 타자들을 잡아내 결국 오승환까지 나설 필요가 없었다. 세인트루이스는 11-6으로 시애틀을 제압했고, 오승환은 다시 점퍼를 입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세인트루이스는 당분간 집단 마무리 체제를 가동한다. 기존 마무리 투수 로젠탈이 올 시즌 극심한 부진을 거듭하면서 보직 이동이 결정됐다. 메이저리그 통산 110세이브 평균자책점 2.93을 기록 중인 로젠탈이 올 시즌 29경기에서 2승3패 14세이브 평균자책점 5.63으로 부진하다. 이닝당 출루 허용율(WHIP)은 2.04를 찍고 있고, 9이닝당 볼넷도 7.9개나 된다. 블론세이브도 벌써 세 차례나 기록했다.
매시니 감독은 “로젠탈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로젠탈에게 9회를 맡길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매시니 감독은 차기 마무리 투수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다. 오승환을 포함해 케빈 시그리스트, 조나단 브록스턴을 상황에 따라 마무리로 활용할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미국 현지 언론에서도 유력한 차기 마무리 투수는 오승환이 될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쌓은 마무리 경험은 물론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 성적이 이 같은 확신을 줄 수 있는 충분한 배경이다.
오승환은 올 시즌 37경기에서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66을 기록 중이다. 38이닝 동안 탈삼진은 무려 51개를 기록했고, WHIP는 0.79에 불과하다. 좌완 시그리스트(4승2패 평균자책점 2.79, WHIP 0.97)나 우완 브록스턴(1승 평균자책점 3.77, WHIP 1.19)과 비교해도 최고의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마무리 경험으로는 오승환을 따라가기 힘들다. 이미 한국과 일본 무대를 평정하고 빅리그에 입성했다. 오승환은 한국에서 277세이브, 일본에서 80세이브를 기록했고, 구원왕 타이틀도 7차례(한국 5회·일본 2회)나 차지했다.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계약 당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빅리그에서는 ‘돌직구’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과 단조로운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는 마무리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오승환은 평균 구속 92.7마일(약 149km)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로 빅리그 타자들을 요리하고 있다.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찌르는 날카로운 제구력 덕분이다.
오승환이 세이브 상황에 등판할 경우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마무리를 맡은 최초의 한국인 투수가 된다. 앞서 구대성(호주 시드니)과 이상훈(LG 투수코치), 임창용(KIA)이 한·미·일 투수로 활약했으나 미국에서는 마무리 보직이 아니었다. 또 아시아 투수 가운데서도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모두 세이브를 따낸 사례는 다카쓰 신고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