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당 이활의 생애-14]넬슨 동상 앞에서 조국애 되새기다

2016-06-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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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신문-한국무역협회 공동기획 (14)

제1장 성장과정 - (9) 런던에서의 생활

목당 이활 한국무역협회 명예회장[일러스트=김효곤 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목적지에 도착하였다는 흥분도 잠깐, 청년 목당(牧堂) 이활(李活)이 부두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를 기다리는 것은 환희의 꽃다발이 아닌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것은 낯선 땅, 낯선 종족, 낯선 생활풍습, 그것이 아니었다.

언어의 장벽.
대학시절을 통하여 틈틈이 영어를 익혔고 영국 유학에 대비하여서는 독학으로 열심히 단련한 그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투의 공부였던 관계로 무엇보다도 우선 발음이 현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어느 정도냐 하면 그는 당장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어떻게 타야 할 것인가조차도 막연할 지경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어디서 타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조차도 통하지 않자 목당은 하는 수 없이 종이에 글을 써서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까지 동원해야 했다.

다행이 영국인들은 이 동양에서 온 이방인(異邦人)을 친절하게 대해 주어 겨우 기차를 타고 워털루교역(橋驛)을 거쳐 런던의 챠링 정거장에 닿을 수 있었지만 이런 언어 장벽으로 인한 고통은 그의 런던 생활 초기의 한동안을 괴롭혔다.

거기에 내팽겨쳐지다시피 서 있는 극동의 한 청년 목당.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아 그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가 이렇게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오가는 군중들만 바라보고 있을 때 마침 경찰복장을 한 사내가 미소를 머금고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도와드릴까요?”

일본 유학시절에 보아 온 경찰, 그리고 조선 땅에서 침략의 첨병으로 매섭게 군림하던 경찰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표정의 말씨와 거동이었지만 그런 태도에 조금도 익숙할 겨를이 없었던 목당으로서는 자신이 무슨 잘못이나 저지른 것이 아닌가 당황했다. 무엇보다도 통하지 않는 언어에 대한 공포심이 먼저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서툰 영어로 마치 변명하듯이 자신은 공부를 하러 방금 이곳에 도착했으며, 어딘가에 거처를 잡아야 하겠으나 막연해서 이렇게 있다는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경찰관은 당장 그를 여행자 안내소까지 데려다 주었고 그곳 가까이에 있는 호텔의 위치와 숙박비, 예약 방법 등을 런던 시 지도까지 펼쳐 놓고 상세히 설명한 다음, 하숙을 정할 때까지는 가도간 호텔(Gadogan Hotel)이 무난하겠다는 의견까지 덧붙여 그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일러주는 것이 아닌가. 목당은 두말없이 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고, 택시 정류장으로 짐까지 들어다 주는 그 경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몇 차례고 거듭할 뿐이었다.

영국의 경찰과 일본의 경찰. 목당은 이 영국 경찰의 친절과 봉사를 받으며 우리 삼천 만 동포도 일본 제국주의 마수에서 하루바삐 벗어나 영국 같은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평화로운 나라를 건설해야겠다는 욕구를 강하디 강하게 가슴에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태운 택시는 얼마 달리지 않아 넓은 광장을 끼고 돌기 시작했고, 승객에게 좀처럼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는 영국인 운전사도 동양에서 온 젊은 청년의 호기심을 알아 차렸는지 저기가 그 유명한 트라팔가(Trafalgar) 광장이며 넬슨(Nelson) 제독의 동상이 거기 높이 서 있는 것까지 알려주었다.

목당은 운전사에게 부탁하여 잠시 공원을 둘러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자 그대로 네모진 광장!

1850년 전 세계를 휩쓸다시피 한 강력한 스페인 함대와 프랑스 나폴레옹이 손을 잡은 연합군의 침공 때 꺼져 가는 영국의 국운을 되살려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저 위대한 넬슨 제독의 동상이 높이 68m의 하늘 높이에 우뚝 솟아 있었다. 곧 트라팔가 해전(海戰)을 기념하고 넬슨 제독의 승리를 자축한 광장이 거기였다. 넬슨의 동상을 받드는 거대한 원주, 그리고 이를 떠받는 대리석 발판하며 그 대리석에 부착된 동판화(銅版畵)들 - 당장 포성과 승리의 나팔이 들리는 듯하며 부상당하여 부축을 받고 있는 모습의 넬슨 제독의 표정에는 조국 영국을 구하겠다는 결의가 서려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사방을 향하여 자리한 네 마리의 엄청난 규모의 사자상, 다시 그 좌우에서 치솟고 있는 분수의 조화는 가히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연못가에는 수많은 관광객과 런던 시민들이 모여 있었고 사람 수보다도 훨씬 많은 비둘기 무리는 그것이 지닌 평화의 상징으로서의 이미지와 함께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넋을 잃고 거기 우두커니 서 있는 목당의 마음속에는 두고 온 산하와 두고 온 겨레가 자리 잡고 있었고 우리에게도 이러한 정기(正氣)와 의로운 힘과 풍요로운 여유가 있을 날은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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