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저는 옷을 벗을 수도 없잖아요. 붙으면 다 여러분 덕분이고, 안 되면 제 탓이니 부담 갖지마세요.”
지난해 7월 9일 영종도에서 진행된 서울시내 면세점 후보기업 면접 현장을 찾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참석자들에게 이같이 격려했다. 사내에서 ‘면세점 유치 결과에 따라 임원들이 옷을 벗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돌자 담당 임직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다.
이부진 사장은 책임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 기업가로 잘 알려져 있다. 연세대 아동학과를 졸업한 뒤 1995년 삼성복지재단 보육사업팀을 거쳐 2001년 호텔신라 전사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2004년 호텔신라 경영전략담당 상무, 2009년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전무를 거친 뒤 2010년부터 호텔신라 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호텔신라 대표이사에 오른 이래 등기임원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 3세 경영인들 가운데 등기임원에 등재된 이는 이부진 사장이 유일하다. 삼성가 관계자는 “이부진 사장이 등기임원을 맡고 있는 것도 그의 강한 책임경영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이 사장은 호텔신라를 키우기 위해 면세점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객실과 식음료 등 전통적인 호텔 사업만으로는 성장이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사장에 오른 이듬해인 2011년 9월 이 사장은 인천국제공항 호텔신라 면세점에 루이비통을 유치했다. 그가 직접 루이비통 사장을 찾아가 설득시킨 끝에 세계 최초로 공항 면세점에 입점시킨 것이다.
2013년에는 동화면세점의 지분 19.9%를 600억원에 인수한데 이어 세계 1위 면세 업체인 DFS를 꺾고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의 시계매장 운영권을 획득했다. 또 작년 3월에는 미국 면세점 기업 DFASS의 지분 44%를 1억500만달러(약 1200억원)에 인수했다. 호텔신라는 인천국제공항과 인천시내에서 면세사업을 하는 엔타스 DFASS 지분 29.9%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 사업권 입찰은 이 사장의 승부사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한 판이었다.
당시 호텔신라는 국내 면세시장 점유율이 30%를 넘어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을 따내면 독과점 논란에 휘말릴 수 있었다. 특히 서울 시내에 면세점을 열 마땅한 부지가 없다는게 더 큰 문제였다. 이 사장은 현대산업개발과 손잡고 이런 문제를 한번에 해소했다. 현대산업개발은 부지(용산역 아이파크몰)는 있지만 면세사업 경험이 없었다. 삼성가과 범 현대가의 ‘정략결혼’으로 (주)HDC신라면세점은 탄생했다. 이를 두고 언론은 "신의 한수"였다고 극찬했다.
이 사장은 현대산업개발과 손을 잡으면서 신설법인의 지분을 50대 50으로 나눴다. 경영 주도권 보다는 명품 브랜드의 지속적인 유치와 서비스 강화를 통해 ‘신라면세점’의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