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 중 가장 유력한 설은 ‘선농제’와 ‘선농단’으로 시작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보면 신라에서 입춘 뒤 선농제, 입하 후 중농제, 입추 후 후농제를 각각 지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성종 때 농사와 인연이 깊은 신농씨(神農氏) 및 후직씨(后稷氏)를 제향(나라에서 지내는 제사)한 기록이 있고, 이 ‘신농씨’가 바로 ‘선농신’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그 선농신을 모시는 제사, 선농제와 그것을 지내던 선농단이 바로 설렁탕의 시작이라는 설이다.
선농단은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던 곳이다. 농사에 관한 전반을 다루는 장소가 됐다. 조선에 와서는 경칩(양력 3월 5일 또는 6일 경) 뒤 길한 날을 골라 제를 올렸는데, 이 때 제물로는 쌀과 기장, 고기는 소와 돼지를 날 것으로 올렸고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나라에서 정한 제사이다 보니 많은 인력이 동원됐다. 이때 수고한 조정대신과 일반 백성들에게 소를 잡아 국말이 밥과 술을 내렸는데, 그 국밥을 선농단에서 내린 것이라 해 선농탕이라 칭했다고 한다.
선농탕이 점차 인기가 올라가자, 여느 장사 풍경과 같이 모방가게가 늘어난다. 하지만 똑같은 이름을 쓸 수는 없었다. 가게들이 조금씩 바꿔가며 쓰기 시작해 지금의 ‘설렁탕’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음식은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