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영화 ‘해어화’(감독 박흥식·제작 더 램프㈜·제공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소율을 통해 제대로 된 아픔을 배웠다. 1943년 비운의 시대, 마지막 기생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한효주는 노래도, 친구도, 사랑도 잃는 소율을 연기했고 전에 없던 생경한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작년 한 해, 소율이라는 캐릭터를 위해 보내왔어요. 극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얼굴이 나온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저는 늘 연기를 잘한다는 말이 좋았거든요. 어릴 때부터요. 더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노력해왔던 것 같아요.”
“소율의 감정은 단순하지 않은 것 같아요. 매 신마다 ‘이런 감정이다!’하고 단정 지을 수 없었죠. 마지막 연희와 일촉즉발의 순간에도 여러 갈등을 하잖아요. 계속 꼬이는 것 같았어요. 소율에게는 노래와 연희, 윤우가 전부였는데 종국에는 모든 걸 잃죠. 극 중 대사에도 ‘난 왜 아무것도 없지? 노래도, 윤우 오라버니도, 너도’하고 콕 짚잖아요. 모든 걸 잃었을 때 남는 허무함이나 충격, 아픔을 그리고 싶었어요.”
‘오직 그대만’의 정화, ‘반창꼬’ 미수, ‘쎄시봉’의 자영을 지나 ‘뷰티인사이드’ 이수에 이르기까지. 한효주는 줄곧 받는 사랑에 익숙했었다. 특히 전작 ‘뷰티인사이드’에서는 25명의 우진에게 사랑을 받았던 터. 우진 역을 맡았던 천우희와 유연석의 외도(?)는 한효주에게 적잖은 섭섭함을 준 모양이다.
“편하진 않았어요. 사랑받을 때랑 느낌이 다르긴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사랑받는 역할은 현장에서도 마구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해어화’ 촬영에서 딱! 알게 됐어요. 뭐 우희나 연석 오빠는 워낙 성격이 쿨해서 연기할 때와 쉴 때를 잘 구분 지었는데 저는 뒤끝이 남아서 연석 오빠 멱살도 잡고 그랬어요. 하하하.”
기교보다는 정아한 창법이 필요한 정가. 한효주는 소율만의 정가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노래를 향한 두 여자의 열망과 열정을 끊임없이 보여주려” 애쓴 부분이기도 하다. 소율의 마음으로 정가를 대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노래에 대한 자존심이 세졌고 때문에 “일부러 정가를 완창”하기도 했다. 정가는 곧 소율의 자존심이자 한효주의 자존심인 셈이었다.
“대중가요를 부를 때보다 정가를 부를 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어요. 하지만 기존에 있던 습관을 허무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쌓아나가니까 더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음을 외우는 게 성취감이 있더라고요. 재밌었어요. 자신감도 생기고요”
정가에는 소질이 있지만, 대중가요의 맛을 살리지 못하는 소율을 위해 “대중가요를 정가처럼 부르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소율이 부르는 노래에는 여러 감정이 서려있어 “때마다 그 감정을 끌어내야” 했다.
“윤우에게 찾아가 울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에서는 특히 노래에 감정을 많이 섞으려고 했죠. 애처럼 서럽게 우는 모습을 살리고 싶었어요. 소율의 아이 같고 순수한 모습을 극대화하려고 한 부분이기도 해요. 변해간다는 느낌을 주려면 이 부분을 특히 잘 살려야 했죠.”
말간 얼굴에 아픔과 상처가 서리고 그것이 곧 독기로 굳어져가는 과정은 한효주의 변신과 연기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구간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상 욕심이 날 법도 하다”고 부추기자 그는 “아니”라며 멋쩍게 웃는다.
“‘이미지 변신에 나서야지!’하고 다짐하고 계획한 건 아니에요. 하하하. 이 작품을 선택할 때 연기적인 갈증은 있었지만, 상에 대한 욕심은 없었어요. 그저 연기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올해로 서른 살. 연기적 갈증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연기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며 “도전하는 마음으로 ‘해어화’를 만났다”고 전한다.
“20대의 마지막에 만나 정말 최선을 다한 작품이에요. 제가 몰두한 그 시간처럼, ‘해어화’는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