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이대호의 홈런 한 방은 한국인을 넘어 아시아인 메이저리거의 자존심이었다.
이대호는 1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2016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홈경기에서 연장 10회말 2사 1루 상황서 좌완 투수 제이크 디크먼을 상대로 대타로 나서 끝내기 결승 2점 홈런을 터뜨리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메이저리그 팀들의 이대호에 대한 전력 분석은 단순했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평정한 슬러거였지만,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시속 95마일(약 152㎞) 이상의 강속구에 반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었다.
이틀 전인 12일 텍사스전에서도 디크먼을 상대한 이대호는 9구 승부 끝에 범타로 물러났다. 이때도 디크먼은 이대호와 자존심 싸움을 벌이듯 97마일(약 156㎞)의 패스트볼로 맞받았다.
이날 다시 만난 디크먼은 마찬가지였다. 이대호를 상대한 3구가 모두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이대호는 97마일 초구를 지켜본 뒤 2구째 95마일 직구에 파울을 기록했다. 이대호는 파울이 되는 순간 표정에서 아쉬움이 짙게 묻어 나왔다.
이대호 역시 자존심 대결이었다. 그리고 디크먼은 3구째 또 높은 97마일 직구를 보란 듯이 던졌다. 이대호는 디크먼의 강속구를 잡아당겨 그의 머리 위로 타구를 날렸다. 그대로 뻗은 타구는 좌측 펜스를 훌쩍 넘어 비거리 124m짜리 짜릿한 대형 아치를 그렸다.
경기 후 이대호는 “빠른 공을 던질 줄 알았고 배트 중심에 맞추자는 생각뿐이었다”고 감격적인 소감을 전했고, 디크먼은 “이대호에게 완벽한 곳에 공을 던졌다. 끔찍했다”고 후회했다.
스캇 서비스 시애틀 감독도 “스프링캠프에서 메이저리그의 빠른 공에 대응할 수 있을까 우려가 있었지만, 결론은 이대호는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이대호는 홈런도 칠 수 있는 타자일 뿐 홈런왕 타이틀을 목표로 하는 슬러거가 아니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그의 스윙은 타격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뒷받침돼 있다. 오히려 홈런보다 장타에 더 강점이 있는 타격으로 일본 무대를 접수했다.
이 때문에 미국 현지 언론들도 놀란 이대호의 이날 홈런은 의미가 컸다. 이대호를 상대로 단순한 강속구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향한 경고 메시지와 같았다. 이대호의 변화구에 대한 적응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일본에서 완벽히 적응을 마쳤다.
단 한 타석 만에 결정적 홈런으로 시애틀을 접수한 이대호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