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993년 6월4일,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 삼성전자 기술개발 대책회의가 한창이었다. 회의 주재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현 삼성전자 회장). 이 회장은 3월부터 열차례 이상 해외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있었다.
회장 취임 6년째를 맞은 그는 1992년 여름부터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몸무게도 10kg 이상 줄었다. 게다가 지난 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LA) 백화점과 할인 판매점을 둘러볼때의 충격이 뇌리에 박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했다.
유럽연합(EU) 출범을 앞두고 세계시장은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국내 1위에 만족하다가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심각한 위기의식이 몰려왔다.
“늘 강조하지만 ‘질(質) 경영’만이 살길이다.”
몇 시간에 걸친 회의 후, 이 회장은 한국 임원들을 돌려보내고, 서너 명의 일본측 고문을 따로 만났다. 이들은 일본 전자업체의 선진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지난 1998년부터 자신이 직접 스카우트한 인물들이다.
“진정으로 삼성을 위한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달라”며 진심을 담아 간곡하게 청했다. 망설이던 일본 고문단이 하나 둘 입을 열었고, 분위기는 곧 뜨거워졌다. 특히 후쿠다 다미오 디자인 고문은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의 문제점을 담은 보고서를 이 회장에게 제출했다.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다.
그해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컨벤스키 호텔. 윤종용 사장, 비서실 김순택 경영관리팀장, 현명관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 등 삼성의 핵심 경영진 200여명이 이곳에 집합했다. 비서실을 통해 회장의 음성 메시지를 확인한 즉시, 비행기 표를 구해 달려온 이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귓가에는 아직도 회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녹음하라. 내가 질 경영을 그렇게 강조했는데 이게 그 결과인가? 수년간 강조했는데 변한 게 고작 이것인가? 사장들과 임원들 전부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켜라. 지금 삼성은 말기 암 환자다. 이제 내가 직접 나서겠다.”
이 회장은 ‘삼성 신(新)경영’을 선언했다. 신경영은 기존 경영관행에 대한 철저한 부정에서 출발했다. ‘양 중심의 경영’을 버리고 ‘질 중심의 신경영’을 통해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제도나 관행에 구애받지 말라. 회장의 눈치도 보지 말고, 소신껏 하라. 회장인 나부터 바뀌겠다. 마누라, 자식빼고 다 바꿔라!”며,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고, 환골탈태하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후 마치 다른 사람처럼 개혁의 선봉장이 됐다. 위로부터 시작된 삼성의 강력한 개혁에는 성역이 없었다.
환골탈퇴에 버금가는 노력 덕분에 삼성전자는 2000년대 들어 세계 IT 상위 기업에 올라섰다. 1992년 당시 2300억원이던 세전 이익이, 10년이 지난 2003년에는 15조원으로 66배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336%에서 65%로 낮아지고, 시가 총액은 20여배나 증가했다.
지난 2003년 ‘신경영 10주년’ 기념 모임석상에 참석한 이 회장은 “신경영을 안 했으면 삼성이 이류, 삼류로 전락했거나 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다”고 말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가 ‘글로벌 삼성’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