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코리아] "북한의 전략적 계산 바꾸는 것이 대북제재 목적"

2016-03-1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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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인터뷰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대(對)북제재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다. 북한이 전략적 계산을 바꿀 수 있게 외교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동력, 그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외교적 해결이 불가능해지면 다음은 군사적 대비다."

천영우(65세)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말이다. '북한이 벼랑 끝에 몰려야 전략적 계산을 바꿀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과 외교부 차관을 지낸 외교안보 전문가다. 2006년부터 2년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초대)을 맡았고, 2006년 2월 열린 북핵 6자회담에서는 수석대표를 맡았다. 지금은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으로 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전략적 계산을 바꿀 수 있게 외교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동력, 그것이 가장 중요한 대북제재의 목적이다"고 말했다. [사진= 남궁진웅 기자 timeid@]

천 전 수석을 지난 9일 오후 3시 아산정책연구소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날은 북한이 경량화된 핵탄두를 표준화·규격화했다고 주장한 날인 동시에, 남한에선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1국 결과로 인공지능(AI)의 획기적 발전을 실감한 날이었다.
천 전 수석에 대한 인터뷰는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과의 대담 형식으로 1시간 30분간 진행됐다.

◆ 북한의 잇단 도발에 이어 이제는 핵탄두 소형화 주장까지 나왔다.

"(지금의 북한 도발은)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 핵심 이해당사국들의 대북 정책이 빚은 필연적 결과다. 핵무기냐 수소폭탄이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 가능한 크기로 소형화 경량화 하는 동시에 폭발력을 키우고 탐지할 수 없는 곳에 은닉할 수단을 개발해 생존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북한은 실험을 계속하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뿐이다. 북한이 그간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메시지는 핵실험을 하더라도 가혹한 처벌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기술적 준비가 완료되고 후환을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자제할 이유가 없다."

◆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로 데리고 나올 방법은 없을까.

"지금 수준의 대북제재로는 북핵을 해결할 수 없다. 또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결단을 내리기 전에 하는 회담은 그것이 양자회담의 형식이든 6자 형식이든 의미가 없다. 제재 자체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북한이 전략적 계산을 바꾸게 하는 것이 제재의 목표다. 북한으로 하여금 '경제·정치·안보적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즉, 핵 포기를 전제로 한 거래만이 우리의 살길이구나'라고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북한의 전략적 계산을 바꾸는게 목표다. 북한이 핵 보유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 때문에 핵 포기 결단을 할 경우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와야 한다. 이 때가 협상이 가능할 때다. 외교력이 발휘될 순간이다. 사실상 북핵을 해결하는 근본적 방법은 외교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동안 북한이 (핵포기)결단을 내리기 전에 대화 테이블에 앉았으니 핵보유 정당화 논리를 펼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런 식의 대화는 북한의 전략적 계산을 바꾸는데 도움이 안된다."

◆ 유엔 대북 제재에 이어 우리 정부 등의 독자적 제재도 나왔는데.

"이제, 대북 제재 국면은 시작됐고 북한도 어느 정도 (대응할)준비를 했을 것이다. 앞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결단을 내릴 것인지 말 것인지, 핵 포기를 전제로 회담에 나올 것인지 말 것인지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재에 따른 중국의 대북 석탄·광물 수입금지 규정을 중국이 어떻게 이행하는지가 큰 변수다. 또 한·미·일이 주로 취할 대북 독자 제재에 대한 강도가 북한의 대외무역경제활동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제재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효할 거라고 과대 평가해서 흐지부지 하게 되면 북한은 큰 고비 넘기고 핵과 경제 병진정책을 향해 질주할거다. 현재로선 핵 보유로 인한 비용을 대폭 높이는 게 가장 전략적으로 북한의 계산 공식을 바꾸는 방법이다. 감당해야 할 비용을 높이는 수단으로서 제재를 늘리는 거다.

◆ 북한이 우리의 구상대로 북한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독자적 핵무장론도 나온다.

"외교적 해결이 '플랜 A'라면 '플랜 B'는 군사적 대비다.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핵무기를 개발할 정치·안보적 명분은 충분하다. 북한의 핵 개발과 공공연한 핵 위협은 NPT 제10조에 규정한 탈퇴 요건을 충족한다. 문제는 우리의 핵 무장이 북한을 억지하고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 도움이 되기는커녕 득(得)보다 실(失)이 크다. 정밀유도무기(PGM)가 등장하면서 종래 전술핵이 수행하던 역할을 대부분 대체할 수 있게 됐다. 동일한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PGM이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외과수술 방식으로 사용되는 데 반해 전술핵은 엄청난 민간인 피해를 수반한다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북한 내에는 PGM으로는 파괴할 수 없고 반드시 전술핵으로 제거해야 할 군사 목표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핵무기의 효용은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에 의해서도 결정적으로 제한된다. 문명 세계의 일원인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북한의 핵 공격으로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응징 보복수단으로만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PGM은 북한의 핵 공격이 임박하면 자위권 차원에서 선제 타격하는 데 제약이 없어 더 실용적이다. 물론 전술핵의 군사적 용도가 PGM보다 못하더라도 북한의 핵 공격을 억지하는 전략적 효과가 있다면 개발을 고려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핵보유국 간에 일반적으로 작동되는 상호확증파괴(MAD)를 토대로 한 핵 억지이론이 북한에는 적용될 수 없는 이치를 간과하면 안 된다. 모든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정치 체제나 정권의 운명보다 국가의 존속이 우선한다. 북한은 그 반대다. 체제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국가와 인민의 운명을 도박판에 내몰 수 있고, 핵무기 사용으로 체제의 종식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집단에 핵 억지이론은 작동할 수 없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고 나오는데 외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한반도 정세가 악화될 때 마다 우리 외교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한반도가 미-중 패권의 각축장이 되고 있고, 얼마 전 언론을 통해 현 정권이 너무 중국을 의식한다는 지적도 했다.

"기대 수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 같다. 현 정부 외교의 기본적 방향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 외교는 국민들이 다 합의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다. 국민들이 잘했다는 게 낙제점이 될 수도 있고, 못 했다고 하는게 성공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예컨대, 한중 관계가 이명박 정부에선 나빴고 현 정부들어서는 좋다고 한다. 그건 외교를 잘 모르는 사람의 시각이다. 외교는 '좋다' 혹은 '안 좋다' 가 아니다. 양국 관계를 우리에게 도움이 되게 끌고 오려다 보면 상대방과 부딪히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한다. 한중 관계를 우리에게 잘 맞게 구조조정을 하려다 보면 알력 다툼과 충돌이 생기기 때문에 국민들이 볼 때 양국 관계가 좋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우리 이익을 다 포기하고 중국이 원하는 대로 하면 사이가 좋은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건 우리의 이익이다. 우리 스스로 이익을 지킬 권리를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 양국의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 해 안보상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외교적 성과라고 규정할 수 있다. 아무리 잘 지내다가도 북핵 문제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문제 등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것이 양국 관계의 진짜 모습이다.
외교란 국민 여론이라는 정서만 따라가다 보면 국익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 정서를 추종하는 외교는 나중에 국익을 훼손하는 외교가 될 수 있다. 외교적 착시현상을 잘 구분해야 한다.


※ 천영우 전 수석은?
▲52년 경남 밀양 출생 ▲동아고 ▲부산대 불어과 ▲외무고시 합격(11회)▲유엔대표부 참사관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파견 ▲장관 보좌관 ▲국제기구정책관 ▲유엔대표부 차석대사 ▲외교정책실장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6자회담 수석) ▲주영국 대사 ▲외교통상부 제2차관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대담 =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 부장
정리=강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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