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2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마무리 한 로템은 2006년부터 전성기를 맞이한다.
로템은 2007년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의 방침에 따라 사명을 ‘현대로템’으로 변경했다. 현대로템은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면서 다양한 종류의 철도차량을 개발했다.
◆2012년 2.5조원 수주 정점 찍어
또한 현대로템은 철도차량 뿐만 아니라 열차종합제어관리장치, 견인전동기, 추진제어장치, 보조전원장치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2010년대를 전후로 신호, 통신, 전력, PSD 및 차량 유지보수 등 철도시스템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종합 철도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하철 9호선 민간투자사업자에도 선정돼 철도운영기관으로서의 지위도 누렸다.
사업 분야의 확대로 현대로템의 철도사업 매출은 2006년 7000억원에서 꾸준히 상승해 2008년 1조원을 넘었고(1조3000억원), 2011년에는 1조8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수주도 해외사업이 뒷받침 되면서 2006년부터 매년 1조5000억원 전후를 유지했고, 2012년에는 해외수주만 1조7000억원에 국내수주를 포함 총 2조5000억원이라는 기록적인 실적을 올렸다. 현대로템 전사 매출에서 철도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5~60%에 달해 주력사업으로서의 위상을 굳혀갔다.
현대로템의 성장은 그룹 총수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철도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와 회사 임직원들의 피나는 노력, 여기에 정부 산하기관과의 확고한 공동 연구개발(R&D) 체제 구축, 협력업체들의 적극적인 사업 참여 등이 하나로 뭉쳐 시너지를 낸 결과였다.
◆성난 파도에 무너진 ‘모래의 성’
그런데, 현대로템이 이뤄낸 성과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제시한 한국 철도차량산업의 문제점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만들어낸 것이었다. 철도차량산업 관계자들은 현대로템이 잘 나갈 때, 오히려 위기설을 주장했으나 그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려는 얼마 못가 현실이 됐다. 현대로템 철도사업 성장 곡선은 2011~2012년을 전후해 하락세로 돌아섰다. 매출은 2012년 이후 1조5000억~1조6000억원대에서 정체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중장기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주실적이다. 2013년 1조7000억원(해외수주 1조4000억원)에서 2014년 1조원(6000억원)으로 급락하더니 지난해에는 6000억원(3000억원)으로 주저앉았다.
또한 현대로템 철도사업은 2014년 430억 원의 영업적자로 적자 전환한 뒤 지난해에는 1894억 원으로 적자가 크게 늘었다. 회사의 중장기 미래를 책임질 수주량 급감이 더 큰 문제다. 올해도 수주 부진이 이어진다면 2017년 말경이면 사실상 공장은 가동중단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대로템이 올 들어 제3차 구조조정에 들어간 이유다.
◆‘독과점’과 ‘대기업 계열’ 이유로 비난 받아
많은 이들은 독점 기업 현대로템이 현실에 안주하며 기술개발 등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고 비난한다. 현대로템에서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자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한다.
우선 독과점 기업이라는 비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고 한다.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3사의 철도차량 사업이 1개사로 통합된 후 국내 철도차량을 대부분 수주했다고 하는데, 통합 이전 정부는 이미 철도차량시장을 외국에 개방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독과점’이라는 표현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통합법인 출범 초기, 자체적인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2003년 일본 미쓰비시가 인천공항공사 순환열차(IAT)사업(열차 9량 108억원)을 따낸데 이어 2004년에는 캐나다 봄바디어가 용인경전철사업(30량, 810억원), 2006년에는 독일 지멘스가 의정부 경전철사업(30량, 660억원), 2007년에는 일본 히타치가 SLS중공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코레일 온양선사업(32량, 444억원)을 수주한데 이어 2008년에는 우전산전과 손을 잡고 대구광역시 지하철 3호선사업(84량, 2211억원)을 가져갔다.
지난해 2월 서울메트로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수주전에서는 국내 중소기업인 로윈-다윈시스 컨소시엄에 고베를 마셨다. 로윈과 유진산전은 철도차량 생산 역량을 갖추면서 국내업체간 경쟁체제를 확립, 서서히 현대로템의 영역을 파고들어왔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비록 수주량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했다곤 해도 현대로템으로 인해 시장이 독점체제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더군다나 현대로템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은 또 다른 이유가 대기업 ‘현대차그룹’ 계열사이기 때문이라는 점은 충격적이다. 정치권과 여론은 현대차그룹이 현대로템을 인수한 것을 정권에 특혜를 받은 것이라며, 현대로템이 경영악화에 이른 것에 대해 대주주인 현대자동차가 이익만 챙기고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도차량은 정부와 함께 역량을 키우고, 정부의 구매에 따라 시장이 생성되는 사업이라는 특성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대로템 해외수주가 1조원을 넘은 것은 2008년(1조2000억 원), 2012년(1조7000억 원), 2013년(1조4000억 원)이었다. 1조원 이상 해외수주는 이명박 정부의 영향력이 미쳤던 시기다. 이명박 정부는 에너지·자원외교를 펼치며 굵직한 인프라 사업 프로젝트에 국내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박근혜 정부도 세일즈 외교를 지속하고 있다. 다만 무게 중심이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고, 경제민주화를 통해 대기업의 더 큰 희생을 강조하는 현 상황에서 특정 대기업을 위한 세일즈 외교는 사실상 막혀있다고 철도차량산업 관계자는 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해외 발주물량이 줄어든 가운데 중국, 일본의 파상적인 공세로 현대로템이 상당수 해외 프로젝트 수주에 실패했지만 현 정부는 “대기업은 각자 알아서 살아 남으라”며 책임을 현대로템의 역량 부족으로 돌리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회사 차원 구조조정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어
지난 9일 현대로템은 창원 공장에서 김승탁 대표와 임직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위기상황 극복을 위한 경영혁신 선포식’을 가졌다.
이날 선포식에서 회사는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 △수익 개선(Revenue) △혁신(Reengineering) 등의 내용이 담긴 ‘3R 경영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희망퇴직을 통한 인력조정과 임원 연봉 반납, 관리직 연봉 동결 등과 더불어 보유중인 부지·자산과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한 현금화, 서울 양재동 서울사무소와 경기도 의왕시 의왕연구소의 통합 추진 등 마른 수건 다시짜기 수준 이상의 비용 통제를 추진한다. 다만, 이러한 활동이 현대로템을 위기에서 구하는 데 필요한 절대적인 방법은 아니다.
철도차량산업 관계자는 “현대로템이 구조조정의 수혜자라고 하는데, 겉으로 보기엔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철도차량 산업은 또 다른 ‘스트레스 산업’이다. 현대차그룹 전체 매출에서 철도차량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런 사업을 총수가 직접 관장하며 애정을 보이고 있다. 오너의 의지 덕분에 지금까지 끌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로템의 경영위기를 개별 회사의 문제로 본다면 향후 미래는 불투명하다. 현대차그룹도 현대로템을 살리기 어렵다. 이미 정부와 관련 기관들이 현대로템측과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 철도차량산업이라는 큰 틀에서 회사의 지원 방안을 이야기해야 해법이 보일 것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