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
새누리당이 29일 새로 마련한 대표 최고위원실 백보드 문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훅 갈 뻔’ 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김무성 대표다.
살생부 파문은 비박(비박근혜)계에 속하는 정두언 의원이 최초 김 대표의 측근으로부터 들었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고, 청와대까지 언급돼 논란은 증폭됐다.
김 대표는 당초 이날 최고위에서 “제 입으로 그 누구에게도 살생부 운운한 바가 없다”며 공식 부인했다. 그러나 정 의원이 지난 26일 김 대표가 자신을 직접 불러 “(물갈이 대상 명단에) 정 의원이 포함돼 있다. 겁나지 않느냐”고 말해, 거짓말 논란까지 더해져 수세에 몰렸다.
논란이 심화되자 긴급 소집된 최고위에서 정 의원과 김 대표 간 ‘대질 심문’ 요구까지 할 정도로, 당내 분위기가 한때 살벌해지기도 했다. 집요한 추궁에 김 대표는 “떠돌아다니는 얘기를 정 의원에 얘기한 것은 사실”이라며 한발 물러났다. 이에 최고위도 클린공천위원회에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수준에서 멈추고, 친박(친박근혜)계 일부가 요구한 김 대표의 사퇴 촉구도 제기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결국 “국민과 당원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공식 표명했다.
이번 살생부 사태를 두고 친박계는 ‘비박계의 자작극’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어차피 공천을 줄 수밖에 없는 서울 험지의 단수신청자인 정두언(서대문을) 김용태(양천을) 의원 등이 명단에 포함되는 등 주요 내용이, 결국 친박계가 비박계를 겨냥해 작성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 대표가 비록 사과는 했지만, 공천 주도권을 가진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공천 칼날을 무디게 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분석이다.
정작 친박계도 잃은 게 없는 게임이 됐다. 물갈이 리스트의 ‘청와대·친박계 개입설’이 실체가 없었음을 김 대표가 스스로 인정, 리더십에 흠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친박계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주도하는 공천 심사에서 김 대표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는 분위기도 있다.
김 대표의 사과로 살생부 파문에 따른 당내 출혈은 긴급 봉합됐지만 후유증은 클 전망이다. 이번 갈등의 본질인 친박계와 비박계 간 권력다툼과 공천 주도권 갈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제2, 제3의 살생부 사태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다음 내분의 기폭제는 이한구 공관위원장에 의한 공천결과 발표와 이번 일로 리더십의 상처를 입은 김 대표의 반전 시도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