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네이버는 1994년 삼성SDS 사내 벤처 1호로 시작해 6년만인 1999년 포털업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인터넷 포탈시장에는 구글, 야후 등 글로벌 기업은 물론 다음, 라이코스, 네띠앙, 엠파스 등 기라성같은 국내 경쟁자도 있었다. 하지만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이들을 모두 제치고, 2005년부터 회사를 국내 1위의 포털 업체로 올려놨다.
이때 돈을 번 사업이 검색광고와 웹보드게임 유료화였다. 한게임을 인수해 NHN을 출범한 배경이었다. 이 창업자는 회사의 모든 역량을 두 분야에 집중해 성공했다. 그는 “열정이 있어야 몰입을 하고, 몰입을 해야 이용자 마음을 읽고, 이용자 마음을 읽어야 수익모델이 나온다”는 경험을 얻었다.
두번째는 2000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통합 검색’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데이터베이스가 적어, 검색 결과의 대다수가 영문 웹(WEB)이었다. 네이버는 검색어에 따라 어떤 정보가 더 중요한지를 분석하고, 해당 정보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세번째는 2001년 선보인 ‘콘텐츠 검색’이다. 이용자를 질문이 있는 사이트로 안내하는게 아니라, 질문에 대한 정답만 발췌해 직접 보여주는 방식이다. 특정 인물을 검색하면 인물의 사진과 함께 프로필 등을 모아 보여주는 것이다. 콘텐츠 검색은 사용자의 질문에 또다른 사용자가 직접 답하는 ‘지식iN’과 함께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값비싼 백과사전이 없어도 누구나 평등하게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던 이 창업자의 획기적인 검색 서비스는 자신이 추구하던 정보평등의 가치를 실현시켰다.
국내에서 성공을 거둔 네이버의 해외 성과는 참담했다. 2000년 한게임재팬과 네이버재팬, 그 이후에도 해외 사업이 진출했지만 줄줄이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시장은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었다.
“모바일에서 네이버는 아무것도 아니다. 없어질 수도 있다”며 위기감을 느낀 이 의장은 정보의 평등을 위해 노력했던 초심으로 돌아갔다.
모바일과 글로벌이라는 화두로 비전을 새롭게 정의했다. “비전이라는 것을 잘못가지면 고집이 된다. 내가 ‘이렇다’라고 말하면 모든 것을 그것에 맞춰서 보려고 한다. 기업을 잘하려면 소비자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흐름이 보인다. 많이 겸손해야 하고, 많이 비워져 있어야 한다. 천재가 되는 것보다 겸손해져야 한다.”
절치부심 끝에 이 의장은 2011년 회심의 한 수를 내놓는다. 글로벌과 모바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출시한 모바일 메신저 ‘라인’이다. 출시 26개월 만에 글로벌 가입자 1억 명을 달성,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얻자 그는 이렇게 고밸했다.
“라인에서 직원들의 마지막 절망감, 혼이 담긴 느낌을 받았다. 사업 성공도 그렇다. 한번의 천재적인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번의 시도에도 성과가 없다가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한번 시도하는 것에서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