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문화재청의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인간문화재) 인정 예고를 둘러싼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현자(80) 태평무 전수교육조교의 아들인 최원준 씨는 25일 A4 10장 분량의 "태평무 보유자 인정 예고에 대한 이의 제기"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놓고, 보유자 인정조사 조사위원 구성, 명단 유출, 양성옥(62)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보유자 자격 등에 문제를 제기했다.
최 씨는 "인정조사에 참여한 조사(심사)위원들 중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자 인정 등의 조사·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제척 사유가 발견될 수 있음에도 조사위원으로 선정된 부분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특정 협회, 학회에 치중해 조사위원을 선정했고, 조사위원 대다수가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들이며 전통춤 전문가(보유자·전수조교 등)는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방인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연구관은 "보유자 인정 예고는 복수의 기관·협회·학회 등으로부터 전문가를 추천받아 여러 번의 검증을 거쳐 이루어졌다"며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위원 명단이 유출된 것은 유감이지만, 위원들에게 조사대상자들과의 접촉을 사전에 방지하고 양심에 따라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을 주문하는 등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해명했다. 방 연구관은 또 "명단이 유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보유자 선정 과정 자체를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무용은 서양무용이 기본…전통춤 계승하기엔 부적합"
최 씨는 양성옥 교수의 보유자로서의 정통성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신무용의 대모 김백봉 선생의 직계 제자로서 신무용 전승, 연구에 힘써온 양성옥교수가 태평무의 보유자로 인정된다면 태평무의 기능 또는 예능을 원형대로 체득·보존하고 그대로 실현할 수 있겠는가"라며 "신무용은 서양무용이 기본이다. 이는 태평무의 원형과 전통성을 지키겠다는 문화재청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는 '중요무형문화재의 기능 또는 예능을 원형대로 체득·보존하고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최 씨는 이를 근거로 신무용 쪽 인물인 양 교수가 전통춤 태평무를 대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또 지난 1월 향년 91세로 타계한 태평무 명예보유자 강선영 명인을 언급하며 "상중(喪中)에 보유자 인정 예고를 강행한 문화재청은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태평무에 앞서 인정조사를 실시했던 살풀이춤과 승무는 결국 인정 예고가 보류되었는데, 태평무만 명인이 별세 하자마자 보유자를 예고했다는 것이다.
양 교수가 보유자 인정 예고된 이후 무용계 내에서는 "스승격인 이현자 전수교육조교를 놔두고 제자격인 양 교수가 보유자가 된다는 것이 불편하고 불만스럽다"는 의견이 표출되기도 했다. 이현자 전수조교는 고 강선영 명인의 제자이자, 양 교수에게 태평무를 이수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무용계 기류에 대해 방인아 연구관은 "'보유자'에 대한 행정과 현장의 체감온도가 다르다. 현장에서는 신무용과 태평무를 서로 다른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양 교수도 1996년부터 전수교육조교로서 태평무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힘써온 인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 "민감한 무용계의 사제관계, 서열 등을 참작한다고 해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 과정·결과까지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2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로 양성옥 한예종 전통원 교수를 인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다음 달 2일까지 소위원회 심의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별다른 이의가 없으면 문화재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양 교수에 대한 보유자 인정을 확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