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정환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 [사진제공=농촌진흥청]
캄보디아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라흐클리 씨는 마을 자조금에서 돈을 빌려 병아리 한 아름을 구입했다. 이제 두 달 남짓 병아리를 키워 시장에 내다 팔면 빌린 돈을 다 갚고도 주머니가 제법 두둑해 질 것이다. 마을 주민 누구든지 담보 없이 월 이자 1.5%에 병아리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케냐 카뎅와 초등학교의 미아노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옥수수 가루를 나누어 주었다. 학교 교육농장에서 어린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직접 생산한 옥수수로 만든 것이다. 몇 주 동안 가족의 점심 끼니를 스스로 해결한 아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가난, 그 불편한 삶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대한민국의 농업기술이 그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개발도상국의 농업 발전을 돕기 위해 2009년부터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 : Korea Program on International Agriculture)을 펼치고 있다. 가난한 이웃나라를 서둘러 돕고 싶다는 의욕이 앞서 사업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전혀 다른 기후 조건에 당황하기도 하고, 낯선 사회경제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현지 연구개발·보급 인력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땀을 흘리는 동안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의 역할은 앞에 나서서 그들의 농업발전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지 문화와 정서에 맞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농업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묵묵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농업기술이 작지만 큰일을 해내고 있다. KOPIA사업에는 거창한 건물도 없고, 깜짝 놀랄만한 자금 지원도 없다. 그 대신 사업에 참여하는 농업인 간의 협동, 자조, 자립을 추구하고 있다. 조금 더디고 답답하더라도 한 마을이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도와주는 방식이다. 그렇게 해야 어느 마을이든 어느 학교든 상관없이, 캄보디아 시골 농민의 소득이 높아지고 케냐의 어린 학생들이 소중한 꿈을 키워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KOPIA센터는 사업비가 연간 2∼3억 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런 조그만 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정부 최고위급에서 노력하는 나라가 의외로 많다. 지금은 힘닿는 대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18개 국가에서 KOPIA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짐바브웨와 라오스에 신규센터를 개소할 계획이다. 기반 조성이 필요한 신규 센터를 제외하면, 센터에 파견하는 소장과 전문가의 문호가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농업기술 개발과 보급에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참여하여 개발도상국 농업 발전에 함께 힘써주기 바란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 대한민국! 하지만 우리는 반세기 만에 가난과 굶주림을 극복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며, 그 밑바탕에는 농업의 발전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농업기술이 현지 농업인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개발도상국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KOPIA사업이 주목을 받기 보다는 현지 농업기술 개발·보급 기관이 농업인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기를 더욱 바란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벗으로서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