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지연 기자 = 연초부터 의료계가 양방·한방 간의 갈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한의사와 양의사 간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초음파 의료기기 검사 시연을 하면서 "나부터 잡아가라"고 하자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은 검찰 고발로 맞불을 놨다.
◆한의학 현대적 수용 vs 무자격자에게 맡기는 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운석용 전 국회의원이 2011년 '한의약 육성법 개정안' 내놓으면서 본격화됐다. 한의학 정의를 '우리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하거나 이를 현대적으로 응용·개발한 의료행위'로 수정하자고 제안하면서다.
특히 정부가 2014년 의료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기요틴(규제개혁)'의 하나로 한의사의 진단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면서 양·한방계 싸움으로 번졌다.
핵심 쟁점은 의료기기 사용자격·허용범위·한의학 현대화에 대한 해석 등 세 가지다.
한의사들은 치료 방법은 양·한방이 다를 수 있지만 질병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의대 교육 과정에도 의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의료기기에 대한 이론 교육을 받고, 골절 같은 질환의 증세는 엑스레이로 쉽게 알아낼 수 있는 만큼 진단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것이 오진을 막을 수 있는 입장이다.
김필건 한의사협회장은 "연세대 보건의료대학원의 논문을 보면 해부학·진단학·영상진단학 등에서 한의대와 양의대의 교육 커리큘럼이 70% 동일한 것으로 분석됐다"며 "의료기기 교육이 부족하다면 관련 프로그램을 개선하겠다고 하는데도 교육조차 하지 말라는 의사협회의 주장은 억지"라고 주장했다.
반면 의사들은 한의사는 의료기기를 사용할 자격이 없다는 입장이다. 의사 면허 소지자는 영상의학에 대한 충분한 이론 교육과 실습 과정을 거친 반면 한의사는 이론 교육만 받아 의료기 사용이 미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협회 측은 "한의학계가 주장하는 엑스레이나 초음파 등은 의사 내에서도 전공의가 아니면 정확하게 판독하기 어려운 세분화된 분야"라고 지적하며 "한의사들이 진단 의료기기 결과를 잘못 판단할 경우 환자의 피해가 더욱 심해진다"고 주장했다.
한의학 현대화 방안에 대해서도 양측의 시각차는 크다.
한의사협회는 "한의학의 현대화·과학화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이라며 "중국은 중의사에게 의료기기뿐 아니라 수술과 일부 양약 사용을 허용해 과학화를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의사협회 측은 "추상학적이고 관념적인 학문을 공부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한의학을 비판하며 "한방이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으면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은 '실험쥐' 환자 안전은 '뒷전'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따갑다. 의료인들이 환자의 안전은 뒷전인 채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국가가 의료인의 면허 제도를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환자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라며 "한·양방 간의 밥그릇 싸움을 보고 있으면 의료가 누구를 위한 학문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한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한 관계자는 "한의대 역시 의대와 동등한 수준의 커리큘럼을 받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해부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침술 역시 효과가 없다"며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막을 것만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제대로 활용해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고 의료계의 발전을 이룰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의료일원화가 이뤄지는 2030년 이전까지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 대한의학회,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의료일원화 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이번 사태를 두고 갈등이 커지면서 마땅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