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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 회장 (사진 출처- 바이두)]
화웨이가 중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창업자의 개성이 가장 큰 빛을 발했다. 특히나 런정페이 회장의 개성으로 묘사되는 것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끈기있게 어려움과 싸울 줄 아는 힘이다.
창조를 위해 몸부림치다 사라진 기업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런정페이 회장은 노력과 열정이라는 정신적인 DNA를 화웨이에 심으면서 자력갱생했다. 그만큼 노력하는 자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 화웨이의 핵심적 가치관이다. 무엇보다 런정페이 회장은 책임과 공헌도로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에 화웨이에는 고위 임원은 사명감을, 중간 간부는 위기감을, 직원은 배고픔을 가져야 한다는 조직 문화가 존재한다.
'야전침대' 문화가 대표적이다. 초기 화웨이는 아무런 배경도 우위도 갖지 못한 '민간기업'이라 밤낮없이 기술을 연구해야만 했고, 피곤을 이기지 못하면 쓰러져 자다가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당시 대다수 직원이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고 사무실 한구석이나 자신의 책상 아래에 야전침대를 깔았다. 지금은 낮잠 잘 때나 쓰라며 야전침대를 지급하지만 여기에는 화웨이인의 노력과 열정이 담겨있다.
승승장구하는 화웨이에 런정페이 회장은 팽팽한 긴장감도 불어넣고자 쉴 새 없이 위기의식도 조성했다. 런정페이 회장은 "번영 뒤에는 위기가 숨어있다. 화웨이가 하루라도 노력하지 않았다면 '아웃'당했을 겁니다.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냉혹한 사실이다"라는 경고도 쏟아냈다.
실제 런정페이 회장은 성공에 도취한 임원의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 1996년 벽두에 마케팅 부서의 관리직 전원에게 사표를 받고, 한 달 동안 내부 공개경쟁 방식으로 엄격한 평가를 거쳐 재임용 여부를 심사하기로 했다. 모든 직원이 승진할 수도 있지만 좌천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이때 창업멤버 3분의 1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지만, 직원들은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고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기 위한 런정페이 회장의 마음을 이해했다. 되레 임직원들은 "봉황은 불에 타도 죽지 않는다"라고 외치며 서로를 격려했다.
이후에도 런정페이 회장은 1997년 '화웨이기본법 대토론', 1998년 '미성숙한 제품개발 반대 운동', 2000년 '사내 창업', 2007년 '1만 직원 권고사직' 등 수많은 사내 캠페인을 진행했다.
2000년 마케팅 부서 단체사표 캠페인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런정페이 회장은 "창업멤버들의 명예만 지켜주려 한다면 그것은 미래를 저버린 것과 같다. 4년 전 마케팅 부서의 단체사표가 없었다면 아무리 선진적인 경영 시스템을 도입했더라도 화웨이에 뿌리내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발전을 방해하는 고질병을 도려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런정페이 회장은 고위 임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많은 연봉을 받는 만큼 그들에게 사업을 성공하겠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이에 런정페이 회장을 비롯한 화웨이 모든 경영진은 지난 20여 년간 24시간 내내 휴대폰을 켜둔 채로 살아왔다. 중국 내에서든 해외에 있든 휴대폰은 울리면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게 화웨이의 불문율이다.
이러한 불문율이 생기게 된 배경에는 과거 런정페이 회장이 비행 중 동행한 의사의 충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집트 카이로발 카타르 도하행 노선에 탑승했던 런정페이 회장은 비행 중 조종사가 기체를 제어하지 못하는 것처럼 덜컹거리는 경험을 한 바 있다.
카이로로 회항 후 런정페이 회장은 동행한 승객에게 무섭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 승객은 의사였고 런정페이 회장에게 "생명이 위독한 환자의 눈빛을 본 적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려면 매일 제대로 충실히 살아야 한다"라고 했다. 런정페이 회장은 의사의 충고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비행기 티켓을 취소할 생각을 접고 2시간 뒤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 서둘러 도하로 발걸음을 옮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