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1월 25일은 아산(峨山)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한국 기업가 정신의 최정점에 있는 그가 현역에서 활동했던 시기는 한국경제가 고도의 성장을 거듭했다. 축복된 자리이지만 2015년 한국경제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기업가 정신마저도 쇠퇴해 버렸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 정말로 무엇이든지 ‘하면 되는’ 것인까?
▲= 그렇다!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 하지만 ‘하면 된다’는 말은 막무가내로 덮어놓고 일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이 제 별명으로 부르는 말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 ‘불도저’란 것도 있다. 육중한 몸짓으로 앞으로 전진하면서 무엇이든지 밀어내는 불도저처럼, 학교 공부도 거의 하지 못한, 못 배운 사람이 무슨 일이든 덮어놓고 덤벼들어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쌓은 학식이 없다고 해서 지혜도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이 가진 자질과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학교에서 배운 학식의 부피나 깊이만을 가지고 내린다는 것은 크나 큰 오류다. 비록 학식은 없어도 전 남보다 열심히 생각하고 더 치밀하게 계산했다. 남보다 적극적인 모험심과 용기 그리고 신념으로 일을 추진했다. 무계획과 무모함으로 현대의 성장이 일구어졌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착각이다. 전 어떤 일에도 결코 덮어놓고 덤벼든 적은 없다.
더 빨리, 더 저렴하게, 그러면서도 더 완벽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찾으면 나오게 되어 있다. 인류의 역사가 바로 그렇게 발전해왔다. 찾는 데도 나오지 않는다면 발전은 그것으로 끝이다. 많은 사람들은 장애가 있다고 하면 장애를 비켜가려고만 한다. 장애는 돌파해야 한다. 비켜서 돌아가는 습관에 들기 시작하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일 앞에서도 비켜갈 궁리만 하게 된다.
고정관념의 노예가 되어버리면 순간순간의 적응력이 우둔해지는 수밖에 없다. 교과서적인 사고방식이 곧 고정관념이다. 뛰어난 학식을 자랑하는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그 학식이 고정관념의 울타리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그럴 때에 바로 불도저 같은 저돌적인 힘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다 될 것 같으면 아무나 불도저를 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시동을 켜고 앞으로 전진만 하면 그만인데 세 살짜리 아이인들 못하겠는가? 눈앞의 지형을 파악하고 굴곡을 살펴보고 그에 맞춰서 방향과 완급을 끊임없이 계산하고 조절하면서 밀고 나아가야 제대로 일이 되는 것이지, 무조건 밀고만 나간다면 움푹 팬 구덩이에 빠져서 꼼짝도 못할 수 있다. 왕성한 힘으로 전진하되 시시각각 유연한 조종술이 필요한 것이 불도저다.
저는 제 ‘불도저’에 생각하고 계산하고 예측하는, 성능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머리를 달고 남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열심히 생각하고, 궁리하고, 노력하면서 밀어붙였다고 자부한다. 긍정적인 생각과 하면 된다는 신념은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지만, 여기에는 ‘해서 될’ 방안을 궁리하고 만들 줄 아는 치밀한 지혜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출처: 현대경제연구원(2011), ‘정주영 경영을 말하다’, 웅진씽크빅>